만나주지 않으면 주변에 해를 끼치겠다는 등 불안감을 주는 문자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보냈다면, 받은 사람이 수신을 차단해 읽지 않았더라도 처벌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통신망법)과 경범죄처벌법을 위반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아무개(32)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200만원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고 26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해 8월2일부터 6일까지 닷새 동안 초등학교 동창 ㅈ씨에게 새벽과 심야 등 밤낮을 가리지 않고 모두 236회에 걸쳐 ‘니네 회사에 전화한다, 야 전화 좀 받아봐’ ‘사랑해’ ‘만나주지 않으면 주변에 해를 끼치겠다’ ‘사기꾼!’ 등 교제를 요구하거나 욕설을 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와 피해자 ㅈ씨는 초등학교 졸업 뒤 동창 모임에서 한 차례 본 것 외에는 별다른 교류가 없었으며, ㅈ씨는 이런 문자를 보내기 전인 지난해 8월1일 이씨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에서는 피해자 ㅈ씨가 이씨의 문자메시지를 ‘스팸’으로 분류해 실제로 문자메시지 내용을 보지 못했는데도 이씨를 처벌할 수 있는지가 쟁점이 됐다.
대법원은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주는 문자메시지를 전송해 상대방이 별다른 제한 없이 메시지를 바로 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면 실제로 메시지를 확인했는지 여부와 상관없이 범죄 구성요건이 충족돼 유죄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정보통신망법의 처벌 대상인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부호·문언·화상·음향 등을 반복적으로 상대방에게 도달하게 하는 행위’에서 ‘도달’은 “상대방이 이들 메시지 등을 직접 접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이를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두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번 사건의 경우 피해자의 수신차단으로 문자메시지들이 스팸 보관함에 저장되어 있었더라도 피해자가 문자메시지들을 바로 확인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 있었으므로, 피해자에게 ‘도달’하게 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피해자 휴대전화로 전송한 문자들은 그 내용, 경위, 기간과 횟수 등을 고려할 때 공포심이나 불안감을 유발하게 하는 문언에 해당하고 반복성도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앞서 1심 재판부도 "이씨와 피해자가 별다른 교류나 친분이 없었던 점, 피해자가 이씨에게 연락하지 말 것을 분명히 요청한 점, 그 내용 등에 비춰 문자를 반복 전송한 행위는 피해자에게 불안감을 유발하는 행위”라며 벌금 2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스팸 처리로 피해자가 문자를 받아보지 않았다는 이씨 쪽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유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상대방이 수신을 거절한 경우에도 문자메시지를 반복적으로 전송해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상태라면 법률상 ‘도달’을 마친 것으로 해석하는 게 옳다. 공포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하는 문언을 상대방이 현실적으로 모두 읽어야 ‘도달’됐다고 해석하는 것은 정보통신망을 건전하고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정보통신망법의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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