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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볼펜 바꿔달라 요구에 ‘5포인트 강박’…공주치료감호소 ‘시정 권고’

등록 2018-11-26 12:20수정 2018-11-26 13:24

인권위, 피치료감호자에게 과도하게 물리력 사용 시정 권고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 입구. 다음 로드뷰 갈무리.
충남 공주시 반포면에 있는 국립법무병원 치료감호소 입구. 다음 로드뷰 갈무리.
#1.

지난 2월, 공주치료감호소에서 치료감호 중인 ㄱ씨는 간호사실에서 볼펜을 지급받았다. 볼펜을 지급받고 병실로 돌아간 ㄱ씨는 곧 다시 간호사실에 돌아와 보호사에게 볼펜을 바꿔달라고 말했다. 보호사는 “같은 볼펜이니 가져간 것을 쓰라”고 권유했고, ㄱ씨는 병실로 돌아가면서 ‘불만 섞인 소리’를 냈다. 이에 보호사가 ㄱ씨를 불러 “할 말이 있으면 정확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자 ㄱ씨는 이 말에 흥분하면서 큰 소리로 횡설수설하고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주치의는 병동으로 내려와 ㄱ씨의 상태를 확인했고, 10분여 만에 ㄱ씨의 팔, 다리와 가슴을 묶는 ‘5포인트 강박’을 하도록 지시했다. ㄱ씨는 결국 이후 4시간 동안 팔다리와 가슴이 묶여 있어야 했다.

#2.

지난해 8월, 공주 치료감호소에 입원 중인 ㄴ씨는 같은 병실의 피치료감호자 김아무개씨에게 바나나를 달라고 했다가 거부당했다. 이에 격분한 ㄴ씨는 김씨 몰래 김씨의 바나나를 버렸다. 이 사실을 안 김씨가 ㄴ씨의 행위를 간호사실에 알렸고, 주치의는 ㄴ씨가 ‘타인의 물건을 버린 행동에 대해 대수롭지 않은 태도를 보인다’는 이유로 의료진에게 ‘5포인트 강박’을 하도록 지시했다. 결국 ㄴ씨는 바나나를 몰래 버렸다는 이유로 4시간 동안 팔, 다리와 가슴 등을 강박 당한 채 묶여있어야 했다.

#3.

지난해 11월, ㄷ씨는 다른 환자가 혈압을 측정하는 모습을 보고 의료진에 자신도 혈압을 측정해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혈압 측정 결과 수치가 낮게 나오자 흥분한 상태로 욕을 하기 시작했고, 바닥에 넘어지며 직원에게 발길질하기도 했다. 주치의는 ㄷ씨를 역시 ‘5포인트 강박’으로 묶도록 지시했고, ㄷ씨가 저항하자 의료진들은 ㄷ씨를 바닥에 넘어뜨리고 억제대를 이용해 강박을 시행했다. ㄷ씨는 사지와 가슴이 묶인 채로 들려 보호실로 옮겨졌고, 여러 수용자들은 ㄷ씨가 묶이고 끌려가는 모습을 고스란히 지켜보았다.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인권위 제공
국가인권위원회 전경. 인권위 제공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입원 중인 피치료감호자에게 과도하게 물리력을 사용하거나, 사유에 상관없이 높은 강도의 강박을 시행한 공주치료감호소 소장에게 관행 개선을 권고하고, 법무부 장관에게는 공주치료감호소의 강박 실태에 대해 관리·감독할 것을 26일 권고했다. 치료감호소는 정신질환을 가진 범법자를 수용해 치료와 사회적응훈련을 하는 보호감독기관이다.

인권위의 조사 결과를 보면, 공주치료감호소는 올 3월부터 6월까지 사유와 상관없이 ‘5포인트 강박’을 204차례 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강박’은 정신의료기관에서 전문의의 지시에 따라 환자의 신체 움직임을 제한하기 위해 손목이나 발목을 강박대 등으로 고정하는 행위로, 부위에 따라 2포인트 강박, 4포인트 강박, 5포인트 강박으로 나뉜다. 2포인트 강박은 양쪽 손목이나 양쪽 발목을 제한하는 조처이고, 4포인트 강박은 손목과 발목을 모두 제한하는 행위다. 5포인트 강박은 손목과 발목에 더해 가슴까지 제한하는 가장 강도가 센 강박이다.

인권위는 ㄱ씨와 ㄴ씨 사례를 두고 피치료감호자의 행위에 견줘 감호소 쪽이 과도하게 ‘신체의 자유’를 제한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큰소리를 치며 눈을 부릅뜨는 행위’를 한 ㄱ씨에게 격리 조처를 할 수 있는데도 강박을 했으며, 그것도 가장 억제 정도가 심한 5포인트 강박을 지시한 것은 정당한 공무집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한, ㄴ씨가 타인의 동의 없이 소유물을 버린 행동에 대해서는 강박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데 불필요하게 강박을 시행했다고 보았다. 인권위는 “보호소가 시행한 204건의 강박 모두가 5포인트 강박인 점을 볼 때 피치료감호자의 상태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관행적으로 5포인트 강박을 시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강박의 필요가 인정되는 경우에도, 그 강박을 하는 과정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도 나왔다. 인권위는 ㄷ씨의 경우 강박 처방이 남용되었다고 보기는 힘들지만, 강박을 하는 과정에서 ‘과도한 물리력’을 사용했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다른 수용자들이 지나다니는 가운데 진정인을 복도 바닥에 눕혀놓고 강박을 시행한 점이나, 강박 후 들것이나 이동 침대를 이용하지 않고 사지를 잡아끌어서 보호실로 이동시킨 행위는 의료적 필요 범위를 넘어섰다”며 “헌법에 규정된 ‘신체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신체적 제한은 ‘치료 감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강박은 위험 회피가 어려울 경우에만 시행해야 한다”며 “격리 등 사전조처 없이 곧바로 억제의 정도가 심한 5포인트 강박을 시행한 것은 과도한 조처로 신체의 자유를 침해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이런 판단을 종합해 공주치료감호소장에게 “법률을 준수하는 강박 시행 및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대상으로 인권교육 실시하고, 직원들을 대상으로 안전하고 인권 친화적인 방법의 격리·강박 교육 실시하라”고 권고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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