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착취 청소년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만든 작품
#1.
7살의 지적 수준을 가진 17살 하은(가명)이는 2014년 성인 남성으로부터 성 착취를 당했다. 채팅 앱에서 만난 남성은 ‘재워주겠다’며 하은이를 모텔로 데려가서 성폭행했고, 하은이는 이후 5일 동안 또 다른 5명의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그런데 수사기관의 판단은 황당했다. ‘하은이가 남성으로부터 치킨과 떡볶이를 얻어먹었다’는 이유로 성폭력이 아닌 성매매 사건이라고 결론 내린 것이다. 이후 하은이는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4개월 동안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하은이를 성폭행 남성들은 3명만 성 매수 혐의로 처벌받았다.
#2.
어머니가 재혼한 뒤 새아버지와 함께 살게 된 일본인 ㄴ(15)양은 부모의 폭력이 두려워 한겨울에 집을 나왔다. 돈이 없어 공원에서 잠을 자고 자판기의 열기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다. ㄴ양이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한 남성이 다가와 “무슨 일이 있느냐”, “배고픈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을 걸어왔다. 편의점 삼각김밥을 사준 남자는 ㄴ양을 집으로 데려갔다. ㄴ양은 도망가려 했지만 저항하면 맞을 것 같아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ㄴ양은 “집에 도저히 있을 수 없을 때 내게 말을 걸어준 것은 남자들뿐이었다. 의지할 곳은 그 사람들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성 착취 청소년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만든 작품.
한일 10대 청소년의 ‘성 착취’ 실태를 알리는 자리가 마련됐다. 성매매를 당한 10대 여성들을 지원하는 십대여성인권센터는 28일부터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대산갤러리에서 ‘성 착취 피해 아동·청소년 오늘’ 전시를 연다고 밝혔다. 해당 전시에는 성매매를 당한 피해 청소년들이 심리치료를 받으며 만든 작품 30여점이 전시됐다. 센터는 “전 세계는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 착취 범죄에 대해 엄격하게 가해자를 처벌하고 있고 아동·청소년은 무조건 범죄 피해자로 보호하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다”며 “우리도 그렇게 되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시회를 개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보면, 한국과 일본의 아동·청소년 성 착취는 광범위하게 퍼져가고 있다. 전시에 소개된 ‘한일 아동·청소년 성 착취 현주소’ 설명문을 보면, 스마트폰이 일상적으로 쓰이면서 성매매의 시간과 공간, 연령의 경계는 점점 무의미해지고 있다. 스마트폰 채팅 앱이 성매매의 경로로 보통 사용되는데, 익명성을 띠고 있는 데다 성인인증절차 없이 다운로드가 가능해 가출 청소년이 아닌 이들도 성 착취의 대상이 되기 쉽다는 것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센터에 상담하러 오는 아이들의 3분의 2가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라며 “(청소년 성 착취는) 가출한 아이들이 겪는 게 아니라 보통 아이들의 문제가 됐다”고 말했다.
일본의 상황도 비슷하다. 성착취 피해 청소년들을 돕는 일본 시민단체 ‘콜라보(colabo)’의 니토 유메노 대표도 “일본은 더욱 (청소년 성 착취가) 사업화되어 있다”며 “햄버거집에서 일하는 것으로 속아서 들어오는 아이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일본은 여고생의 성을 상품화한 것을 ‘제이케이(JK) 비즈니스’라고 칭하는데, 2016년 일본 경시청 조사를 보면 도쿄에만 제이케이 비즈니스 업체가 174개에 달한다. 10여년 전 가출 당시 성매매 권유를 받은 경험이 있다는 니토 대표는 “시부야나 신주쿠 등에 제이케이 비즈니스 업체의 ‘스카우트’가 각각 100여명쯤 파견돼 길거리 어린 여성들에게 (제이케이 비즈니스를 하라고) 말을 건다”며 “‘배고프지 않느냐’고 묻는 등 성매매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말을 거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소위 ‘원조교제’, 제이케이 비즈니스의 책임을 오직 10대 청소년에게 떠넘기는 한국과 일본 사회의 인식에 대해 비판했다. 한일 사회는 모두 성 착취 청소년에 대해 ‘철이 없다’, ‘네가 조심했어야 한다’고 비판하는데, 성 착취의 전적인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는 얘기다. 조 대표는 “성 구매자가 마땅히 받아야 하고 비난 대상이 돼야 하는데 아이들이 처벌받고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 분위기라면 아이들이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겠느냐”며 “당연히 성 착취로 보고 어른이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니토 대표도 “일본의 경우에도 (남성이 성 구매를 했다고 하지 않고) ‘여자아이가 성을 팔았다’고 말하는 등 제이케이 비즈니스를 여성의 문제로 본다”며 “청소년 성을 구매하는 남자가 있고 그걸 이용하는 업체가 있다는 걸 주목하는 어른이 적다”고 밝혔다.
이들은 ‘반복되는 청소년 성 착취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청소년 복지가 강화되어야 한다”는 공통된 답변을 내놓았다. 조 대표는 “아동학대의 대상자들이 성 착취 대상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이 잘 깔려야 하고, 가해자는 처벌이 무서워 청소년을 건드리지 못하도록 가해자만 강하게 처벌하는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니토 대표도 “성 착취 청소년들의 배경에는 학대가 있고 가정폭력이 있다. 어쩔 수없이 이 세계로 유인된 것”이라며 “아동복지가 모자라 이런 상황이 됐다고 알리는 활동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일 성 착취 청소년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이번 전시는 다음 달 9일 오후 2시까지 열린다.
신민정 기자
shi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