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10월 부산마산민주항쟁 당시 부산지역에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자 부산 중구 중앙동에 있던 당시 부산시청 앞에 탱크와 장갑차가 배치됐다. 부산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공
1979년 부산·마산(부마) 민주항쟁에 대해 박정희 정권이 내렸던 계엄 포고는 위헌·위법한 것이어서 무효라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9일 부마 민주항쟁 당시 유언비어를 퍼뜨렸다는 이유로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영일(64)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1979년 10월18일 공포된 계엄 포고 1호는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다. 그 내용도 언론·출판과 집회·결사의 자유, 학문의 자유 및 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영장주의 원칙에 위배됨은 물론, ‘유언비어를 날조·유포하는 일체의 행위 금지’ 등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는 위헌이고 위법한 것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따라서 김씨의 혐의는 ‘범죄로 되지 아니한 때’에 해당해 무죄”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박정희 유신정권의 종말을 앞당긴 부마 민주항쟁에 대한 성격을 분명히 했다. 대법원은 “당시의 계엄 포고는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적 저항인 부마 민주항쟁을 탄압하기 위한 것이었을 뿐이다. 당시의 정치·사회 상황이 계엄법에서 정한 ‘군사상 필요한 때’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부산 지역에는 1979년 10월18일 비상계엄이 선포됐으며, 같은 날 ‘유언비어의 날조·유포를 엄금한다’는 내용이 담긴 계엄 포고 1호가 발령됐다. 당시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부산·경남지방 간사였던 김씨는 이틀 뒤인 10월20일 진상 파악을 위해 부산에 온 손학규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운동 간사(현 바른미래당 대표) 등에게 “데모 군중이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났다”는 유언비어를 유포한 혐의(계엄법 위반)로 재판에 넘겨졌다. 1981년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2년을 확정했으나, 2016년 7월 부마민주항쟁 관련자의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률(부마민주항쟁보상법)에 따라 재심이 개시됐다.
재심을 맡은 부산고법은 “당시 김씨의 피의자신문조서를 보면, 김씨는 손씨 등에게 ‘반항하면 발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거나, 학생 수명이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신빙성이 없다. 이번 데모에서 총소리가 군중에서 났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것은 공갈탄 소리일 것’이라고 말했다고 진술했다”는 점을 들어, “김씨가 유언비어 자체를 그대로 전달하려 한 게 아니라 유언비어가 신빙성이 없거나 사실과 다르다는 의견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심 재판부는 더 나아가 “계엄 포고는 계엄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채 공포된 것으로 위법해 무효이다. 또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해 위헌”이라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계엄포고령 발령은 통치행위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이유로 상고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이날 “계엄 포고는 ‘명령’에 해당하는데, 헌법의 ‘명령·규칙·처분에 대한 위헌·위법 심사권’은 법원에 있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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