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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식칼로 “죽인다”해도 지침은 “도망쳐라”뿐…고통받는 채권추심원

등록 2018-11-30 11:15수정 2018-11-30 23:59

산와대부, 실적압박에 직원 동의 없이 강등규정 바꾸기도
채권추심 노동자들 “회사와 채무자 사이에 낀 존재…약자끼리 멱살”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 10월 초부터 산와대부 근로감독 중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그래픽 정희영 기자 heeyoung@hani.co.kr
지난 10월까지 일본계 대부업체 산와대부(브랜드 이름 ‘산와머니’) 소속 채권추심원이었던 김문경(가명·29)씨는 방문 추심을 하다가 끔찍한 일을 겪었다. 채무자의 채무 변제를 독촉하는 일을 하는 채권추심원은 7일 이상 연락이 닿지 않은 채무자들의 경우 집을 직접 찾아가 채무자의 상황을 확인한다. “2016년에 (법원집행관과 함께 채권자 자격으로) 김해로 추심하러 갔을 때 생긴 일이었어요. 채무 액수가 500만원 정도였는데 변제할 상황이 안 된다고 해서 (법원집행관이) 가구에 빨간 딱지를 붙이고 있었죠. 그런데 채무자가 갑자기 식칼을 들고 ’죽이겠다’며 위협하는 거예요. 혼비백산하며 도망쳐 나왔지만 경찰에 신고하지도 못했어요. 회사에서는 일이 커지길 원치 않거든요.” 채권추심원들에게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다. 멱살을 잡히는 경우도 있고, 얼굴에 침을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한 회사의 대처법은 ‘도망쳐라’ 뿐이다. “지침은 없어요. 그냥 도망치라고만 해요. 그러다 잘못되면 무리하게 추심하다 해코지당한 추심원 개인의 책임이 되는 거죠.”

빚 상환에 몰린 채무자들에게 빚 독촉을 하는 일을 맡고 있는 산와대부 채권추심원들이 회사의 무리한 실적 압박, 일부 채무자들의 물리적 위협 사이에 끼어 고통을 받고 있다. 전·현직 산와대부 직원들은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채권추심원이 “회사와 채무자 사이에 낀 존재”라고 표현했다. 채무자들에게 인간적인 연민을 느끼다가도 회사의 실적 압박에 무리한 채권 추심을 하게 되고, 무리한 채권 추심은 다시 채무자의 신고를 거쳐 채권추심원의 직책 강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으로 최근 산와대부를 퇴사한 채권추심원 박진혁(가명·29)씨는 채권추심원으로 일하는 2년6개월 동안 방문 추심을 나가면 아침 7시에 출근해 오후 8시30분께가 되어서야 퇴근할 수 있었다. 산와머니 경남 양산지점에서 근무했던 김씨는 밀양이나 김해까지 다니며 하루에도 30건 이상의 채권 추심을 했다. 회사는 법정 채권 추심 가능한 시간인 아침 8시에는 첫 집을 방문하고, 저녁 8시 무렵 마지막 집을 방문하길 원했다. 채무자가 출근하기 전이나 퇴근 뒤 가족들과 함께 있는 시간에 추심해야 한다는 이유였다. “5일, 15일, 20일이 직장인들 월급날이잖아요. 그런 날이면 방문 사원들은 계속 밖에서 근무해야 해요. 정상적으로 근무하면 오전 9시에 출근에 오후 6시 퇴근인데, 양산에서 밀양까지 이동해 아침 일찍 추심하려면 새벽 6∼7시에는 출근해야 했어요. 퇴근 뒤 집에 돌아오면 밤 10시고요.” 회사는 아침에 출발할 때 보고를 받고, 집에 돌아가 차에 시동을 끈 시간까지 보고를 받았다. 출퇴근 시간을 꼼꼼히 보고했지만 회사는 그 시간을 온전히 ‘근무시간’으로 인정하지 않고,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까지만 근무시간으로 인정했다. “회사가 고용노동부 근로감독관에게 직원들이 ‘자율적으로’ 근무한 것이라고 말했다고 하더라고요. 말이 안 되죠.”

직원들의 장시간 근무는 실적 압박 탓이 컸다. 회사는 한 시간에 4건 이상의 방문 추심을 돌며 실적을 내길 요구했다. 실적이 나오지 않으면 직책을 강등해 월급을 깎았다. 회사의 실적 압박을 받다 보면 무리하게 채권 추심을 하기 일쑤였다. 문서화된 매뉴얼은 없지만, 강압적인 채권추심 방법은 지점장 등을 통해 ‘알음알음’ 전수됐다. “회사에서는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 늦게 집을 방문해서 가족이 있는 가운데 어느 정도 ‘협박’을 하길 원해요. 실적과 회사에 요구에 맞추다 보면 채무자들을 압박해야 하니까 험한 말도 나오고요. 또 법적으로 방문 추심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의 집에 방문해 압박하게 되는 일도 있죠.” 그렇게 무리하게 추심을 하다 보면, 어떤 채무자들은 물리적으로 위협하거나, 회사 쪽으로 신고를 넣는다. 그런데 신고가 접수되면 회사는 종종 채권추심원의 직책을 강등하고 월급을 깎았다. 대부 회사의 부는 채무자와 채권추심원이란 ‘약자와 약자’가 서로를 갉아먹는 악순환 속에 축적되고 있는 것이다.

회사의 강등체계는 ‘주먹구구’였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별다른 통보 없이 수시로 징계기준을 바꿨다. 현직 산와대부 직원 최정원(가명)씨는 “심한 경우에는 징계기준이 이틀 사이에 두 번씩 바뀌기도 했다”며 “한 사람당 요구되는 회수 금액이 갑자기 늘어나기도 하고, 채권의 대손(채무자가 상환능력이 없어 청구가 불가능해 발생한 손실)을 갑자기 강등 기준에 넣기도 했다. 주먹구구였다”고 전했다. 회사는 직원들을 실적에 따라 강등시키면서도 별도의 징계위나 상벌위도 열지 않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사유도 모른 채 강등 며칠 전 점장한테 통보를 받는 게 전부였다. 박씨는 “입사한 지 4~5년차된 사람인데 강등이 잦아 신입과 똑같은 연봉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며 “직원들은 진급을 시키지 않으려고 강등 기준을 마음대로 바꾼다고 의심한다”고 말했다. 회사는 지난 8월 직원들에게 제대로 된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고 식대 10만원을 깎기도 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서울강남지청이 지난달 초부터 산와대부에 대해 근로감독에 들어가 있는 상태다. 지난 10월부터 산와대부 소속 전·현직 직원 20여명이 산와대부가 임의로 취업규칙을 바꾸고 시간 외 수당 등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다고 신고하면서 이뤄진 근로감독이다. 최근까지 진행된 근로감독에서 산와대부의 문제점으로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취업규칙을 변경할 때 노동자 과반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이런 동의 절차가 누락됐다는 점 등이 지적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30일 “조만간 근로감독을 마무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겨레>는 직원들의 문제 제기에 대해 산와대부 쪽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답할 내용이 없다”는 답변만 받았다.

채권추심원들은 채무자들과 애증에 가까운 ‘양가감정’을 갖고 있었다. 채권추심원들은 채무자들 중에 사연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최정원씨는 추심을 할 때 ‘인간적인 고민’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남편이 돈을 빌려서 외국으로 갔는데 아내만 집에 남은 거죠. 강제집행에 들어가서 경매까지 가는 상황이었는데 아내가 ’우리 남편이 그럴 사람이 아니다. 남아있는 돈은 대학 등록금으로 쓸 돈’이라고 말하면서 우는 거예요. 그때 채무 액수가 200만∼300만원 정도였는데 그게 감당이 안 된 거죠.”

김문경씨는 일을 하다 다리가 잘린 이에게 300만원을 받아내야 했다. “안타깝죠. 그런데 그런 분들에게 몇 번이고 찾아가서 채무를 변제하게 하는 게 저희 일이었으니까요. 저희도 법적 근로시간을 지키면서 탈법하지 않고 추심 일하면 좋죠. 하지만 그러면 실적이 나오지 않고, 회사의 압박에 견디기 힘들어요.”

이제는 채권추심원 일을 그만둔 김씨는 이렇게 덧붙였다. “실적 압박에 시달리는 채권추심원에 대한 보호장치가 있어야 채무자들도 보호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약자와 약자끼리 멱살을 잡는 셈이니까요.”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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