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전 경기도 구리시 구리암사대교 인근에서 전날 추락한 산림청 헬기 해체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추락 헬기는 해체된 뒤 국토교통부 항공사고조사위원회로 보내져 정밀 분석을 받을 예정이다. 구리/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산불 진화에 나섰다 추락한 산림청 헬기에 대한 사고 원인 조사가 시작된 가운데 추락한 헬기가 최근 두 차례 결함으로 수리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안전 진단을 통과하고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사고 헬기는 생산된 지 20년이 넘은 것으로 노후화에 대한 지적을 꾸준히 받아왔다.
1일 서울 영축산에서 발생한 산불을 끄려고 출동한 산림청 소속 헬기가 화재 진압을 위해 물을 뜨던 중 한강으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뒷자리에 앉았던 정비사 1명이 숨지고 조종사 2명이 다쳤다. 사고 헬기는 러시아 카모프사가 제작한 ‘KA-32T’ 기종으로 옛 소련의 차관을 무기로 대신 받는 이른바 ‘불곰사업’을 통해 도입됐다. 현재 산림청 헬기 46대 가운데 60%(27대)를 차지하고 있다.
현재 이 기종의 절반 이상은 생산된 지 20년이 넘는 경년항공기(노후항공기)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박완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산림청 헬기 현황’을 보면, 올해 12월 기준으로 노후항공기로 분류되는 KT-32T 헬기는 14대로 같은 기종의 52%에 달한다. 이번에 사고가 난 ‘서울613호’는 1997년 9월에 만들어져 제작된 지 21년을 넘은 노후 항공기다.
<한겨레> 취재 결과 ‘서울613호’는 지난달 2일과 22일 두 차례 결함이 보고돼 수리를 완료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고 직후 산림청은 “지난 10월 해당 헬기가 ‘100시간 검사(100시간 운항한 뒤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엔진 내시경 검사)를 받았으며 당시 특별한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고 이후 운항시간이 10시간 남짓에 불과하다”고 밝혔지만, 10시간 동안 2차례나 결함이 발생한 것이다.
박완주 의원실이 지난해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KA-32T의 경우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고장 복구에서 다음 고장 때까지 걸리는 평균 운항시간은 17.2시간이었다. 이처럼 결함 발생이 드문 일은 아니지만 ‘서울613호’의 경우 평균 보다 짧은 시간 내에 잇따라 결함이 발생해 기체 이상으로 사고가 났을 가능성도 있다. 산림청 관계자는 “결함 보고는 중대한 경우도 있고, 사소한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도 “다만 서울613호가 11월에 어떤 결함이 보고되었는지는 현재 확인하기 어렵다”라고 밝혔다.
산림청의 경우 헬기 정비인력도 부족한 편이다. 박완주 의원실이 지난 9월 산림청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보유헬기 46대를 정비하는 인력은 76명이다. 헬기 1대를 정비사 1.7명이 맡는 셈이다. 이는 해양경찰청 4.9명(항공기 23대, 정비 인력 113명), 소방청 3.1명(26대, 81명), 경찰청 2.7명(18대, 49명)과 견줘 가장 적은 수준이다.
사고 원인으로 노후화로 인한 기체 결함 등이 언급되는 가운데, 기체 결함의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주장도 나온다. 해당 기종 헬기 정비사 ㄱ씨는 “헬기는 주기적으로 부품을 교체하기 때문에 기체 외에는 새 것이다. 20년이면 충분히 운항 가능한 ‘현역’ 항공기”라며 “KA-32T는 잘 만든 항공기로 전자 장비 쪽에 문제가 있으면 모르겠지만 기체 자체에 문제가 생긴 경우는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ㄱ씨는 “헬기가 물을 담을 때 수면이 너무 잔잔하면 강 표면이 어디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종종 생긴다. 헬기가 물 쪽에 너무 가까이 접근해 사고가 발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사고에서 뒷좌석 정비사가 숨진 것을 놓고 안전장비 부족 지적도 나온다. 해당 기종을 여러 차례 탄 적 있다는 ㄴ씨는 “뒤쪽 의자가 간이의자로 매우 부실하고 공간도 좁다”며 “안전벨트를 하면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 구조라 화재 진압 때 정비사들이 안전벨트를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신인균 국방자주네트워크 대표 역시 “KA-32T 기종은 구조상 뒷좌석 천장이 매우 낮고 공간도 좁다. 뒷좌석 쪽은 조종석 쪽에 비해 문도 아주 작은 편이다. 이 때문에 구조가 쉽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같은 기종의 산림청 헬기가 강원 삼척에서 산불 진압 중 고압선에 걸려 비상착륙을 했을 때도 뒷좌석에 탄 정비사만 숨졌다.
국토교통부 항공철도사고 조사위원회는 2일 전날 사고 직후 한강 둔치에 인양해놓은 사고 헬기를 해체한 뒤 일부를 김포공항 인근 조사위로 옮겼다. 헬기를 해체한 것은 한번에 옮기기가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 조사위는 이날 병원에 입원 중인 사고 헬기의 부기장을 방문해 당시 상황을 확인하려 했으나 환자의 몸상태, 가족들의 요청 등을 고려해 추후 대면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조사위는 사고 현장에서 수거한 헬기 블랙박스와 사고 당시 설명을 토대로 1차 사고 원인을 규명할 방침이다. 최종적인 사고 조사 원인 규명에는 몇달의 기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정환봉 장예지 최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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