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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는 고시원 전국 3403개

등록 2018-12-04 16:22수정 2018-12-04 20:36

인권위, 비주택 거주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토론회
4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논의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임재우 기자
4일 서울 중구 인권위에서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논의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임재우 기자
#1.

ㄱ씨는 지난달 9일 서울 종로구 국일고시원 화재를 보고 악몽을 떠올렸다. 지금은 서울 용산구의 한 고시원에 사는 ㄱ씨는 수년 전만 해도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에 있는 쪽방 3층에 살았다. ㄱ씨가 살던 쪽방에도 화마가 덮친 적이 있다. ㄱ씨는 창문으로 뛰어내려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하지만 이웃 3명은 목숨을 잃었다. 그때의 ‘트라우마’로 ㄱ씨는 지금도 고시원 방을 고를 때 입구 쪽 방을 고집한다. ㄱ씨는 지금도 그때와 변한 게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사는 고시원도 국일고시원처럼 시설이 오래되긴 마찬가지예요. 불이 나지 않는 이상 완강기를 만져보거나 사용할 일도 없고요. 소방 점검이 나오면 소화기만 확인하지 말고 거주민들 모아놓고 완강기 사용법을 알려주기만 해도 좋겠어요.”

#2.

서울역 맞은편 동자동 쪽방촌에 사는 ㄴ씨는 노숙하던 시절 건강이 악화해 다리를 절단했다.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게 된 ㄴ씨에게 쪽방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화장실이다. 쪽방의 화장실은 재래식이어서 앉아서 볼일을 봐야 하는 ㄴ씨는 사용할 수 없었다.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휠체어를 타고 서울역까지 가야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에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참는 수밖에 없다. ㄴ씨는 변비가 심해 약까지 먹는다고 했다. “쪽방을 벗어나 임대주택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보증금이 500만원이라는 거예요. 기초생활수급자인 제가 수급비를 모아서는 마련할 수 없는 돈이죠. 최소한 집 안에서 화장실에 갈 수 있는 곳에서 살고 싶었는데 지금으로선 희망이 안 보여요.”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4일 오전 서울 중구 인권위 배움터에서 연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논의를 위한 토론회’에서 쏟아진 ‘비주택’ 거주자들의 하소연이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고시원·쪽방 등에서 사는 ‘비주택 거주’ 당사자들의 이야기와 함께, 인권위의 용역으로 한국도시연구소가 실시한 ‘비주택 주거실태 및 제도개선 방안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조사 결과, 비주택 거주민들은 화재·재난·범죄 등에 매우 취약한 상태로 생명권 및 건강권 등 근원적인 권리를 침해당할 우려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 비주택 거주자 5명 중 1명 “범죄 피해 경험 있어”

‘비주택’은 ‘사회적으로 주택으로 인정받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곳’으로 고시원·비닐하우스·쪽방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2015년 통계청의 인구주택 총조사를 보면, ‘주택 이외의 기타 거처’에 사는 가구는 39만여 가구에 이른다. 지난 7월23일부터 8월31일까지 한 달여간 고시원, 숙박업소 객실, 판잣집 등 비주택에 사는 203개 가구를 대상으로 실시된 이번 조사에서는 비주택 가구가 겪는 어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조사 결과를 보면, 비주택 거주민의 84.2%는 1인 가구로, 적정 주택을 임차할 목돈이 없어 대부분이 ‘보증금이 없는 월세·사글세’ 형태의 비주택(80.8%)을 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고시원이나 숙박업소에 사는 경우 평균 주거 면적은 6.6㎡(2평) 미만이었고, 그나마 방음이 취약해 사생활 침해가 일상이었다. 고시원에 사는 기아무개(29)씨는 “방 사이의 벽이 얇아서 통화내용이 다 들렸다. ‘아 이 사람은 빚 때문에 쫓기고 있구나’까지 알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거주자 5명 중 1명가량이 범죄 피해를 본 경험(19.7%)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쪽방에 거주하는 조아무개(57)씨는 “여름에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살기 때문에 도둑이 자주 든다”고 했고, 고시원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김아무개(27)씨는 “고시원 총무에게 스토킹을 당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비주택’ 열악한 상황도 조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응답자의 55.2%는 현재 거처에서 겪는 어려움의 주요 원인으로 ‘열악한 시설’을 꼽았다. 비주택 주거공간에 독립된 부엌이 없는 비율이 33%에 이르렀으며 화장실과 목욕 시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는 응답도 많았다. 10가구 중 1가구(13.3%)가 여전히 재래식 화장실을 쓰고 있었고, 목욕 시설에서 냉수만 나오는 가구도 20.7%에 달했다.

특히 냉난방이 문제였다. 거처 내 난방시설이 없는 가구는 24.1%였으며, 겨울철 실내온도를 적절히 유지하고 있지 못하다고 응답한 가구는 절반을 넘었다(57.5%). 응답자 중에는 난방 시설이 고장 나더라도 월세 인상이나 퇴거의 위협 때문에 임대인에게 수리를 요청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 경우도 있었다.

수도권 규제 사각 고시원 위치. 출처 인권위 보고서
서울시 규제 사각 고시원 위치. 출처 인권위 보고서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 없는 고시원 전국 3403개

이번 실태조사 보고서에서는 화재로부터 무방비한 고시원 규모도 드러났다. 보고서를 보면, 대형화재 참사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화 대상이 아닌 고시원의 규모가 전체의 30%에 육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시원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의 간이 스프링클러 설치가 의무화된 2009년 7월8일 이전에 설립돼 지금까지 운영 중인 고시원 숫자를 파악한 결과다.

국민안전처의 2016년 다중이용업소 관련 현황 통계로 고시원의 영업 시작 시기·주소 등을 파악해 확인한 결과, 다중이용법 개정안 시행 이전에 지어져 스프링클러 설치 의무가 없는 고시원은 전국 1만1900개 고시원 가운데 3403개에 달했다. 특히 이 가운데 절반이 넘는 1945개가 서울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의 고시원 상황을 살펴보면, 관악구와 동작구, 동대문구에 규제 사각지대 고시원 숫자가 많았다. 관악구에 있는 901개 고시원 가운데 417개의 고시원이 규제 사각 고시원이었고, 동작구와 동대문구에도 각각 184개·111개로 100개가 넘는 규제 사각 고시원이 있었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이강훈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부본부장은 “별도의 영업신고 없이 설립할 수 있는 고시원은 건축법상 건축기준과 소방안전기준 외에 아무런 규제를 받지 않는다”며 “영업신고 제도를 만들고, 현행 안전기준을 충족하지 않아도 되는 기존의 고시원에 대해서도 지방자치단체가 일정한 비용을 지원하는 경우 안전시설 설치를 강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부가 ‘비적정 거처’ 거주자 지원해야

토론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주거권도 인권’이라는 인식으로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비주택’ 가구에 공공임대주택 등 적정한 주거환경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비주택’과 ‘주택’이라는 도식적인 구분을 넘어 ‘적절한 주거’를 제공받지 못하는 가구를 ‘주거권’의 테두리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최 소장은 “주택으로 분류되더라도 지하·반지하 주택은 비주택 못지않게 주거환경이 열악하다”며 “주택이 아닌 것이 비주택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함 삶을 위협하는 열악한 거처를 ‘비주택’으로 정의해 한다”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는 취약계층을 위한 공공임대 주택의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선미 서울주거복지센터협회 정책분과장은 “공공임대의 공급이 너무 적다 보니 주거 취약 계층이 고시원·쪽방·여인숙 등 민간인 임차기구에 의존하게 된다”며 “주거 취약 계층이 장기 거주할 수 있는 매입주택을 신청한다 해도 대기 기간이 1년이 넘고, 본인이 원하는 지역에 매입임대주택이 있는 경우가 거의 없다. 공급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최은영 소장은 ”시세의 60∼80%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행복주택은 가난한 사람들이 가기엔 너무 비싼 공공주택일뿐더러 대부분 신혼부부에 치중된 형태”라며 “정부가 무주택 서민을 위해 2022년까지 공공임대주택 65만호를 공급했다고 한다. 비주택 가구는 39만 가구로 추정된다. 우선 순위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서 해결될 수 있는 것”이라고 짚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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