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서울고법. 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피의자가 선임한 사선변호인 없이 진행된 구속 전 피의자 심문(구속영장 실질심사)과 그에 따른 구속은 위법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헌법이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됐기 때문이다.
중국인 ㅈ아무개(27)씨는 지난 3월 국제우편으로 필로폰을 수입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로 체포됐다. ㅈ씨는 곧 변호인을 선임해 함께 검찰의 첫 피의자 신문을 받았다. 그런데 서울남부지검 검사는 체포 다음 날 ㅈ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변호인’란에 ㅈ씨의 변호인을 적지 않았다. 구속영장 청구서에는 변호인의 이름이 적힌 피의자 신문이 첨부됐다. 하지만 서울남부지법 판사도 검사의 실수를 바로잡지 못하고 국선변호인을 선정해 피의자 심문을 진행한 뒤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헌법 제12조 제4항은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한다. 이에 ㅈ씨의 변호인은 재판에서 “사선변호인의 참여 없이 이루어진 피의자 심문 결과 구속됐다”며 위법한 구속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1심은 “국선변호인의 참여하에 심문이 이루어진 이상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볼 수 없다”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은 채 징역 3년을 선고했다.
2심 판단은 달랐다. 서울고법 형사5부(재판장 김형두)는 “구속영장청구서에 변호인의 성명이 기재되지 않아 피의자가 스스로 선임한 변호인의 조력을 받지 못하고 그 변호인도 변호활동을 할 기회를 박탈당한 채 피의자 심문이 실시됐다면,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을 침해한 위법이 있다. 이러한 피의자심문의 결과 이루어진 구속은 헌법 제12조 제3항이 정하는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봄이 마땅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먼저 헌법의 ‘변호인 조력권’은 ‘사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고 규정했다. “헌법이 정하는 변호인 조력권의 본령은 피의자(피고인) 자신의 의사에 기하여 선임한 변호인으로부터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 즉 사선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라고 봄이 타당하다”며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을 침해·박탈당한 피의자에게 국선변호가 제공됐다고 하여 헌법적 기본권이 침해가 정당화된다거나 절차의 하자가 치유된다고 볼 수 없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이어 영장심사의 중요성과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 권리’를 강조했다. 재판부는 “각종 형사사법절차 중 다른 어떤 절차에 비하더라도(경우에 따라서는 오히려 공소의 제기 이후 이루어지는 공판절차보다도) 피의자 심문 단계가 변호인의 법적 조력이 가장 절실하고 긴요한 때”라며 “(사선변호인이) 정작 피의자 심문 기일을 통보받지 못해 변호활동을 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당했다면, 피의자는 자신이 선임한 변호인으로부터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 중에서도 핵심적·본질적 부분을 침해당한 거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피구속자의 권리는 피구속자를 조력할 변호인의 권리가 보장되지 않으면 유명무실하다”며 “변호인이 피의자심문을 대비하는 변호활동을 할 기회를 상실했다면 피의자를 조력할 변호인으로서의 권리 역시 침해당했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이를 종합하면 구속영장 청구서에 적히는 변호인의 성명은 “간과되서는 안 될 필요적 기재사항”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재판부는 ㅈ씨의 혐의를 인정해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위법한 구속을 토대로 수집된 증거(제2회 피의자 신문조서)는 증거로 쓸 수 없다”면서도 “구속 이전에 수집된 증거 만으로도 공소사실을 유죄로 인정하는 데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김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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