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군 사북읍에 있는 강원랜드 본사. 강원랜드 제공
지난달 26일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에 선발돼 강원도 정선으로 향했던 최아무개(24)씨는 입사 하루 만에 크게 실망하고 퇴사를 결심했다. 영업 실무를 배우기 위해 ‘리조트 영업’ 분야에 지원했는데, 강원랜드에서 최씨에게 시키는 일은 기대와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최씨는 “영업사원 관리나 세일즈 능력을 기르려고 지원한 건데, 인사 담당자는 그릇 닦기와 서빙, 기물 관리가 내 일이라고 하더라”며 “채용 공지에는 ‘리조트 영업’이라고 나와 있던데, 그걸 보고 누가 서빙을 떠올리겠느냐”고 반문했다.
하루 만에 퇴사 절차를 밟은 건 최씨만이 아니다. 사무행정 분야에 지원한 이아무개(26)씨도 지난달 26일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에 선발돼 업무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이씨 역시 인턴이 아니라 아르바이트 업무를 교육받았다. 이씨는 “업무에 들어가기 전 교육용 자료를 받았는데 자료에 교육 대상자가 ‘아르바이트’라고 적혀 있더라”며 “나는 이곳에 인턴으로 왔지만 회사는 그냥 이름만 다른 아르바이트를 뽑은 거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고용 부진 상황 개선을 위해 지난 10월부터 공기업과 공공기관에 체험형 인턴 등 단기 일자리를 확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데,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공공기관 가운데 하나인 강원랜드가 정부 지시에 구색을 갖추기 위해 단순 잡무를 하는 아르바이트인데도 실무를 배우는 ‘체험형 인턴’으로 포장해 고용하고 있어 취업준비생들을 황당하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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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24일 강원랜드 채용 누리집에 올라온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 모집’ 공고. ‘리조트 영업’ ‘사무행정’으로 소개된 모집부문 옆에 ‘직무체험 3개월 과정’이라 적혀 있다. 강원랜드 채용 누리집 갈무리 (*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원랜드는 지난 10월24일 누리집에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 모집’ 공고를 올리고 ‘카지노 딜러’ 50명, ‘리조트 영업’ 50명, ‘사무행정’ 30명 등 모두 130명의 체험형 인턴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카지노 딜러는 ‘딜러 교육 포함 5개월 과정’, 리조트 영업과 사무행정은 ‘직무체험 3개월 과정’이라고 공지했다. 강원랜드는 2006년께부터 연간 평균 8천여명의 아르바이트를 채용해왔는데, 인턴 선발은 2011년과 2014년 ‘청년 인턴’ 선발 이후 4년 만이다.
하지만 이 모집에 응해 체험형 인턴으로 일한 이들은 “인턴 다수가 직무체험을 시켜준다는 애초의 공고와 달리 단기 아르바이트 수준의 단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현재 강원랜드에서 사무행정 분야 체험형 인턴으로 일하는 ㄱ씨도 최씨나 이씨와 같은 경우다. ㄱ씨는 “자잘한 사례 찾기나 데이터 정리 등을 하고 있다”며 “직원들이 하는 직무에 투입되길 기대했는데 회사에서는 우리에게 실무를 맡기지 않는다. 내가 받은 사원증에도 신분이 ‘아르바이트’라고 적혀 있다”고 말했다.
최아무개씨가 발급받은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 사원증. 신분이 ‘아르바이트’라고 돼 있다. 최아무개씨 제공
게다가 인턴들이 처한 생활 환경도 열악한 상태다. 체험형 인턴으로 선발된 이들은 숙소가 없어 기존 아르바이트들이 사용하던 2인1실 방에 ‘얹혀’ 지내고 있다. 최씨는 “바닥에 요를 깔고 생활했다. (아르바이트들이 쓰는) 침대 두개가 이미 들어가 있어 이불을 깔면 방이 꽉 찬다. 짐을 풀어놓을 곳도 없었다”며 “여성 숙소에는 자물쇠도 없어 문을 잠그지 못한 채로 잤다”고 말했다. 이미 2주 동안 이런 숙소에서 생활해온 ㄱ씨는 “회사는 언제까지 인턴들이 2인1실 방에 끼인 채 살아야 하는지 안내해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강원랜드 체험형 인턴에 참여하는 여성 인턴들이 생활하는 숙소. 아르바이트 직원 2명이 사용하던 방에 인턴들이 2명씩 추가로 들어가서 이불을 깔고 지내야 한다. 최아무개씨는 “이불 2개를 깔면 비좁아 짐을 풀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최아무개씨 제공
애초 공고와 다른 일을 하고 생활 환경도 열악하지만 극심한 취업 경쟁에 내몰린 청년들은 이런 현실을 꾹 참고 있다. ㄱ씨는 “대한민국에서 취업난을 이겨내려면 자기소개서 경력란에 적을 수 있는 스펙이 중요하다”며 “인턴 경험을 한번쯤 쌓아야 한다고 생각해 꾹 참고 계속 일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씨는 “학기 수료 뒤 영업 일을 배워보려 공들여 자소서도 쓰고 면접 준비도 했는데 속은 기분”이라며 “강원도 정선까지 왕복한 시간이 총 12시간이 넘는다. 취업 준비로 1분 1초가 소중한 시기에 시간 낭비를 한 것 같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강원랜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정부에서 하는 일자리 늘리기와 관련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청년 고용시장이 안 좋은 상황에서 공기업으로서 정부의 일자리 늘리기 방침에 발맞추고자 2014년 이후 4년 만에 체험형 인턴을 선발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성수기마다 아르바이트를 뽑아서 일을 시켜왔는데, 이번에는 명칭을 체험형 인턴이라고 붙인 것뿐”이라며 “리조트 영업과 같은 분야에선 아르바이트와 인턴이 같은 영역에 배치돼 일하긴 하지만 인턴에게는 보다 깊이 있는 실무를 제공하려고 한다”고 해명했다. 생활 환경과 관련해서는 “숙소는 인턴과 아르바이트 등 직원 모두에게 부족한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