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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같이 일할 수 없는 사람” MB 정부 인권위 블랙리스트 있었다

등록 2018-12-11 14:15수정 2018-12-11 21:19

2009년 블랙리스트 존재는 확인, 2008년과 2010년 블랙리스트는 추정
인권위, 이명박 정부 블랙리스트 관련자 검찰에 수사 의뢰키로
2011년 발생한 점거농성 도중 사망 장애인 활동가에 공식 사과하기로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모습(사진 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국가인권위원회 건물 모습(사진 왼쪽)과 이명박 전 대통령.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가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 2009년 작성한 ‘인권위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아울러 언론을 통해 보도된 2008년 경찰청 ’블랙리스트’와 2010년 청와대 ‘블랙리스트’도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검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또한, 2011년 인권위 농성 도중 발생한 장애인 인권 활동가 사망 사건에 대해서도 유족과 국민들에게 사과했다.

인권위는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브리핑실에서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 의혹과 고 우동민 장애인 인권활동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인권위는 올 1월 나온 인권위 혁신위원회의 권고안에 따라 해당 사안에 대해 지난 7월부터 11월 초까지 약 4개월 동안 사무총장을 단장으로 자체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를 진행했다. 최영애 인권위원장은 이날 브리핑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가인권옹호기구인 국가인권위원회의 존재 이유는 오직 ‘인권’만을 판단의 나침반으로 삼아 부당한 공권력으로부터 국민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키는 것에 있다. 그런데 인권위는 2009년 청와대 관계자가 인권위 고위 간부를 만나 블랙리스트를 전달한 의혹을 2012년 인지하고도 그냥 침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스스로 인권위의 정체성과 독립성을 유기하는 과오를 범했다”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 인권위 “이명박 청와대 블랙리스트 건네받은 사무총장 진술 확인”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 의혹은 2012년 4월 인터넷 언론매체인 <뉴스타파>에서 2009년 10월 청와대 직원이 김아무개 당시 인권위 사무총장을 만나 관리해야 할 인권위 직원들의 명단을 전달했다고 보도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당시 인권위는 적극적인 조사나 입장 표명 없이 ‘해당 문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해 활용된 적 없다’는 취지의 보도 해명자료만 배포했다.

하지만 이번 진상조사 결과, 인권위는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의 인권위 블랙리스트가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자체 진상조사와 언론보도 내용 등을 종합한 결과, 이명박 정부 당시 블랙리스트가 두 개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추정했다. 2008년 경찰청 정보국에서 작성한 ‘경찰청 블랙리스트’와 2009년과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에서 작성한 ‘청와대 블랙리스트’가 그것이다.

인권위는 이 가운데 ‘청와대 블랙리스트’가 최소 2건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2009년 10월 청와대에서 인권위 사무총장에게 건네진 ‘블랙리스트’와 지난 10월 검찰의 영포빌딩 압수 과정에서 발견되었다고 알려진 ‘2010년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 업무계획 보고문건‘이 그것이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에서 “2009년 10월 청와대 직원이 ‘현 정부와 같이 갈 수 없는 사람’이라며 인권위 직원 10여명의 인적사항과 경력이 기재된 서류를 당시 사무총장에게 전달했고, 사무총장은 이를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라는 의미’로 생각했다고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인권위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10여명 중 5명의 이름을 확인했고, 이중 2명이 2009년 조직개편 과정에서 면직됐다고 밝혔다. 반면 2010년 보고문건의 경우 “조사권한의 한계 등으로 직접 확인하지 못했으나 인권위를 과거 문제위원회로 낙인 찍고 정비를 추진한 계획이 담겨있다고 알려진 이 문건이 실제로 확인될 경우 블랙리스트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인권위는 아울러 최근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재판과정에서 언론을 통해 보도된 경찰청의 현안 참고자료 청와대 보고문건 역시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해당한다고 봤다. 2008년 11월27일 경찰청 정보국에서 작성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문건에는 인권위 직원을 진보와 보수로 분류하고 인적 쇄신을 통해 이념적 편향성을 조정해야 하고, 감사원 감사 결과를 근거로 별정·계약직 인원을 축소해야한다는 등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인권위는 “경찰청이 지난 6월 브리핑을 통해 영포빌딩 경찰 문건 진상조사 결과, 언론에 보도된 문건과 제목이나 내용이 유사한 문건을 확인해 별도 수사를 진행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점”을 경찰청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추정하는 근거로 들었다.

인권위는 경찰청 등 관계 기관의 비협조와 조사권한의 한계 등으로 밝히지 못한 명확한 사실관계 규명을 위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포함한 관련자들을 검찰에 수사 의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인권위는 “블랙리스트를 통한 강제적 인권위 조직 축소는 블랙리스트 명단에 포함된 이들에 대한 인권침해는 물론, 인권위 독립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행위로 형법상 직권남용에 의한 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영애 인권위원장 블랙리스트와 장애활동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재우 기자
11일 서울 중구 인권위 브리핑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영애 인권위원장 블랙리스트와 장애활동가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임재우 기자

■ 블랙리스트 배경에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

인권위는 블랙리스트 작성 배경에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촛불집회가 있다고 판단했다. 당시는 인권위가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대응을 두고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던 시기다. 2008년 5월16일 안경환 당시 인권위원장은 부산대 특강에서 경찰 시위진압 방식을 정면 비판했다. 또 인권위는 5월부터 8월까지 집회 현장에서 인권지킴이를 운영했다. 직권조사를 통해 촛불집회에 대한 경찰의 인권침해를 인정하기도 했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에서 2008년 6월 인권위 설립 이래 처음으로 감사원 종합감사가 진행됐으며, 감사 결과를 근거로 이듬해 4월 당시 행정안전부가 별정·계약직 등 직원 44명을 면직하고 인권위 조직을 축소한 것도 당시 정부의 눈에 인권위가 ‘눈엣가시’였음을 증명하는 정황이라고 봤다. 이는 ‘경찰청 블랙리스트’에 담겨져있다고 알려진 조직 개편 내용과 일치한다는 게 인권위의 설명이다. 청와대의 ‘인권위 길들이기’는 2009년 7월 현병철 위원장이 취임하면서 더욱 노골화됐다. 2009년 ‘청와대 블랙리스트’가 전달된 것도 현병철 위원장 취임 직후인 그해 10월이다.

인권위는 “2008년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와 관련된 인권위의 업무활동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명박 정부가 인권위를 소위 ‘좌파’ 집단으로 규정하고, 진보성향 시민단체 출신의 별정·계약직 직원을 축출하기 위해 ‘경찰청 블랙리스트’를 통해 조직개편을 단행한 것으로 보인다”며 “조직개편으로 미리 축출하지 못했거나 축출했지만 연구용역, 보조금 지원 자문, 재임용 배제 등 사후관리 차원에서 ‘청와대 블랙리스트’를 인권위 당시 사무총장에게 전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청와대가 전달한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인사 가운데 한 명으로 당시 인권위 정책과장으로 일했던 김형완 인권정책연구소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당시 사무총장이 청와대 비서실에서 인편을 통해 이 정부와 도저히 같이 일할 수 없는 인권위의 좌파적 성향을 가진 인물들의 명단을 보내왔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듬해인 2010년부터 저는 간부회의에서 배제되기 시작했고 쌍용차, 용산참사 등 중요한 현안에 대해 보고서를 만들어 올려도 인권위원장의 결재가 나지 않아 인권위 전원위원회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는 일이 반복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만시지탄이지만 인권위가 매운 교훈을 얻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고 우동민 장애인인권활동가와 함께 활동했던 김기정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영정을 든 이)이 2011년 1월4일 낮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1층 로비에서 승강기가 작동하지 않자 영정을 든 채 울고 있다. 우씨는 지난해 12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에서 농성을 벌이다 폐렴에 걸려 숨졌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 우동민 장애인인권활동가와 함께 활동했던 김기정 성북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영정을 든 이)이 2011년 1월4일 낮 서울 을지로 국가인권위원회 1층 로비에서 승강기가 작동하지 않자 영정을 든 채 울고 있다. 우씨는 지난해 12월 현병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인권위에서 농성을 벌이다 폐렴에 걸려 숨졌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 인권위 “고 우동민 활동가 사망, 유족과 국민에게 사과”

인권위는 또 2010년 겨울 인권위에서 농성하다 병원으로 옮겨진 뒤 2011년 1월 사망한 고 우동민 장애인 인권활동가에 대해 당시 인권위가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는 등 인권침해 행위를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해 사과했다.

전국장애인차별연대 등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은 2010년 11월22일부터 2012년 10월까지 인권위 건물 배움터 등에서 점거 농성을 했다. 당시 고 우동민 활동가는 2010년 12월6일 점거농성에 참여하던 중 몸에 이상이 생겨 병원 응급실로 이송됐다. 우 활동가는 같은 달 23일 기침·열·호흡곤란 등의 증상을 보여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한 뒤 이듬해 1월2일 폐렴으로 사망했다.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은 당시 인권위가 농성장의 난방과 전기 공급을 끊고, 활동보조인의 출입과 식사 반입을 제한하는 등의 인권침해 행위를 한 것이 원인이 돼 우씨가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관련 기사 : ‘벽창호 인권위’에 스러진 장애인의 꿈)

진상조사 결과, 인권위는 “당시 인권위가 활동보조인의 출입을 매주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난방 등 최소한 조처도 취하지 않아 우동민 활동가를 비롯한 중증장애 인권활동가들이 활동보조인의 조력을 충분히 받지 못하고 장시간 추위에 노출됐던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따라서 인권위는 활동보조 지원을 받을 장애인의 권리를 제한하고 최소한의 체온 유지를 위한 난방 조처를 끊은 것은 당시 농성 중인 장애인 인권활동가들의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침해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인권위는 “고 우동민 활동가의 사망에 대해 유족, 인권활동가, 국민에게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모든 사람의 기본적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옹호자를 보호해야 하는 사명과 책무가 있는 기관이 인권침해 행위를 했고, 지난 8년 동안 이에 대한 진상파악 없이 책임을 부인하는 태도로 일관해 왔다”며 “향후 고 우동민 활동가 명예회복을 위한 조처 및 인권위 차원의 인권옹호자 선언 채택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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