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 4층에서는 법관과 법원공무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사법행정제도 개편안에 대한 법원 내부 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은 법원행정처 제공.
법관 10명 중 8명, 법원공무원 10명 중 6명은 법원조직법 개정을 통해 신설될 사법행정회의가 사법행정에 관한 총괄기구가 아닌 심의·의결기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법원은 지난 4일부터 10일까지 법원 내부망을 통해 법관 1347명, 법원공무원 3687명을 대상으로 '사법행정제도 개선을 위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사법행정회의의 위상에 대해 법관의 79.1%, 법원공무원의 63.9% 등 전체 법원 구성원의 67.9%가 '사법행정사무에 관해 심의·의사결정 권한을 갖는 기구'여야 한다고 답했다고 12일 밝혔다. 사법행정회의가 ‘사법행정사무에 관한 총괄권한(심의·의사결정 및 집행)을 갖는 기구여야 한다’는 응답은 법관의 15.0%, 법원공무원의 27.5% 등 전체의 24.2%에 그쳤다.
이런 결과는 사법행정회의에 사법행정사무 집행권까지 포함한 총괄권한을 주어야 한다는 ‘사법발전위원회 건의 실현을 위한 후속추진단’의 법원조직법 개정안과 크게 다른 것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은 설문조사 등 법원 내 의견수렴 결과를 토대로 법원조직법 개정안을 확정해 이번 주 중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 제출할 방침이다. 김 대법원장이 법원 내 다수의견을 이유로 사법행정회의 위상을 심의·의결기구로 낮추고, 대법원장의 사법행정사무 총괄권한을 사법행정회의에 넘기지 않는 쪽으로 개정안을 확정할지 주목된다. 이 경우 ‘개혁 후퇴’라는 법원 외부의 거센 비판이 예상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지난 9월13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에서 열린 '대한민국 사법부 70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중요 사항 심의·의사결정’으로 권한 축소 주장 다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사법행정회의를 심의·의결기구로 할 경우에도 ‘사법행정사무 전반에 관해 포괄적으로 심의·의사결정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는 의견은 응답 법관의 16.0%인 반면에, ‘중요 사법행정사무에 국한해 심의·의결을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응답 법관의 66.4%였다. 법원공무원 가운데서도 54.8%가 중요 사무에 국한해 심의·의결해야 한다고 답했다.
그렇게 판단한 이유로는 응답 법관의 52.3%가 '법관 보직 인사권을 포함한 중요 사법행정사무에 대한 심의·의결만으로도 대법원장 권한을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비상근 위원으로 구성된 사법행정회의가 총괄권한 또는 포괄적인 심의·의사결정 권한을 행사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37.1%)거나 ‘법률상 기구인 사법행정회의가 총괄권한을 가지면서 헌법기관의 장인 대법원장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은 법체계상 맞지 않는다’(34.4%)는 이유를 선택한 법관도 많았다.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 설치된 정의의 여신상. 강창광 기자 chang@hani.co.kr
사법행정회의 비법관 참여에도 부정적
사법행정회의 위원 11명의 구성에 대해서도 설문조사 결과는 후속추진단의 개정안과 크게 달랐다. 후속추진단이 대법원장을 제외한 위원 10명을 법관·비법관 위원 5명씩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정한 반면, 응답 법관의 42.4%는 비법관 위원 수가 10명 중 3명이 적정하다고 답하는 등 68.4%가 1~3명 이내여야 한다고 답했다. 후속추진단 방안대로 5명이 적절하다는 법관은 16.0%였다. 법원공무원 가운데선 비법관 위원 3명이 적절하다는 응답이 32.1%로 가장 많았으나, 5명이어야 한다는 응답도 28.6%였다.
응답 법관들은 사법행정회의 산하 분야별 위원회에 비법관 위원이 참여하는 것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모든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으로 족하다’(47.2%)는 의견이 다수였으며, ‘참여를 반대한다’(27.1%)는 의견도 많았다. ‘필요성이 인정되는 위원회에 한해 필수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19.6%)거나 ‘모든 위원회에 필수적 참여를 보장해야 한다’(4.7%)는 의견은 소수였다. 비법관 위원이 분야별 위원회에 참여할 경우의 적정 비율을 묻는 질문에도, 가장 적은 ‘재적 3분의 1 이하’라고 답한 법관이 68.8%였다.
법원노조 참여 두고 법관·법원공무원 이견
비법관 위원을 추천할 추천위원회 구성원을 추천할 기관으로는 대한변호사협회, 국회, 법무부 등이 고르게 꼽혔다. 법관의 56.2%, 법원 공무원의 29.3%가 국회를 적절한 추천기관으로 꼽아, 추천위원회 구성을 둘러싼 ‘삼권분립 원칙 위배’ 논란에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추천위 구성원을 추천할 기관으로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를 꼽은 법원 공무원은 70.9%였으나, 법관은 22.6%에 그쳤다. 응답 법관의 49.1%는 ‘공무원노조 법원본부가 비법관 위원 구성에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법원공무원의 다수가 ‘법원본부장이 사법행정회의의 비법관 당연직 위원이 되어야 한다’(28.3%)거나 ‘법원본부에서 법원공무원을 위원으로 추천해야 한다’(27.0%)고 답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법관 위원의 선정에서 전국법원장회의와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추천하는 법관 위원의 비율이 1대1이 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는 법관의 38.0%, 법원공무원의 28.2%가 찬성했다. 추천방식으로는 각 회의체에서 복수 추천해 대법원장이 선택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고 응답한 법관이 67.6%였다.
한편 사법행정회의 신설, 법원행정처 폐지, 신설 법원사무처에 상근법관 근무 폐지 등을 뼈대로 하는 사법행정제도 개편 방향에 대해 ‘모두 동의한다’고 응답한 법관은 24.9%였다. 그러나 응답 법관의 48.6%는 ‘법관 보직인사의 기초 업무를 법원사무처에서 비법관 직원이 담당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답했으며, ‘신설될 법원사무처에 상근법관을 두지 않는 것에 반대한다 ‘(36.8%)거나 사법행정회의가 법관 보직인사까지 다루는 것에 반대한다'(31.3%), ‘외부 인사가 사법행정회의 위원으로 참여하는 것에 반대한다’(25.5%)는 응답도 많았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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