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형사립고(자사고)와 일반고가 동시에 학생을 선발하고 자사고 지원자에게 일반고 중복지원을 불허하는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이 학교선택권, 사학운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인지를 놓고 헌법재판소가 14일 공개변론을 열었다.
이날 공개변론에서는 “자사고에 학생 ‘우선선발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족사관고·상산고·현대청운고 학교법인 등 청구인 주장과 “자사고의 우수학생 선점과 입시 위주 교육으로 교육생태계가 파괴되고 있어 자사고에 계속 우선선발권을 부여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교육부 쪽 반박이 팽팽하게 맞섰다.
지금까지는 전기인 8~11월엔 자사고와 외국어고·국제고·과학고 등이, 후기인 12월~2월에 일반고 입시가 치러져 왔다. 그러나 2017년 12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은 올해 말부터 자사고가 후기에 일반고와 같이 신입생을 뽑고, 평준화 지역의 후기학교 중복지원 대상에서도 자사고를 제외하도록 했다. 이에 자사고 학교법인과 자사고 지망 학생 및 학부모들은 지난 2월 헌법소원과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냈다. 헌재는 지난 6월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에 지원한 학생들은 불합격할 경우 일반고에 진학할 수 없게 되거나 아예 자사고 지원을 포기하는 등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수 있다”며 해당 시행령 조항의 효력을 정지시켰다.
청구인 쪽은 “자사고에 우선 학생선발권을 보장해주는 것은 자사고의 본래 설립취지를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요건이다. 추첨 또는 면접에 의한 자사고 입학전형이 입시경쟁을 유발하거나, (전기학교로 유지하는) 과학고·영재고에 비해 고교서열화의 주된 원인도 아니다.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에 불합격한 학생이 일반고에 배정되기 어려워지면 학생과 학부모들은 자사고 지원을 기피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자사고가 괴멸된다. 이는 학생의 학교선택권과 사립학교 운영의 자유 및 그 핵심인 학생선발권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제약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인 쪽 참고인인 윤정일 서울대 사범대 명예교수는 “교육감은 일부 파행 운영되는 자사고가 있다는 이유로 모든 자사고를 심각하게 규제한다"고 말했다.
이해관계인 자격으로 참가한 교육부 쪽은 “자사고가 후기선발로 바뀌어도 학교장의 학생선발권은 변동이 없다. 자사고는 학생 우선선발권이라는 특혜를 누리면서도 설립취지에 반하는 입시 중심 교육과정을 운영했고, 고교서열화를 초래했다. 고교 입시경쟁 완화, 동등하고 공정한 입학전형, 우수학생 선점 및 고교서열화 완화라는 입법목적에 비춰 이번 시행령 개정은 평등권이나 사학운영의 자유, 학교선택권을 침해하지 않는다. 자사고에 특혜를 더 부여할 근거도 없다. 교육환경의 변화에 따라 입시 제도는 계속 변화해왔고 또 변화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해관계인 쪽 참고인인 주석훈 서울 미림여자고등학교장도 "자사고로 인해 일반고 학력저하, 고교서열화를 야기하고 입시 중심 교육에 치중하는 등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기에 지금이라도 바로잡는 게 옳다"고 힘을 실었다.
재판관들은 ‘시행령을 통해 입시와 관련한 중요한 사항을 바꾸는 것이 헌법상의 교육제도 법정주의를 위반한 것 아닌가’ 등을 물었다. 청구인 쪽은 “사립학교에 대한 실질적 제한을 허용하려면 법률적 결단이 있어야 한다. 시행령 개정으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교육부 쪽은 “학생선발 시기 등은 지금까지 시행령으로 정해왔다. 이것이 헌법상 ‘교육제도 법정주의’나 포괄위임입법 금지원칙에 반한다면 그동안의 입시 제도가 모두 위헌이 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청구인 자격으로 출석한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은 “2000년대 초 자사고로 전환을 권유받을 때, 앞으로 정책이 바뀔 수 있다는 얘기가 있었다면 당연히 응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교육부 쪽은 ‘법정부담금이나 장학금 등 자사고 인가 당시의 조건을 지키지 않은 학교만 인가 취소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재판관들의 질문에, “그런 정책도 병행하겠지만, 지금의 문제는 몇몇 학교의 지정취소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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