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안관찰법 신고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혐의로 넘겨진 세번째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용주씨가 지난 2월2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변호사들과 대화를 하면서 웃고 있다. 김명진 기자
“오늘 결정은 저 혼자 이룬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뜻을 함께 해줘서 이룰 수 있었던 작은 진전입니다.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넓히고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드는 데 밑거름이 됐으면 합니다.”
‘최연소 비전향 장기수’ 강용주(56·전 광주트라우마센터장)씨는 17일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무거운 족쇄를 풀어버린 홀가분함을 이렇게 전했다. 그는 이날 19년 만에 ‘보안관찰’ 대상에서 벗어났다. 강씨는 간첩조작 사건으로 14년간 옥살이를 하고 1999년 특별사면으로 풀려났지만, 이후 검찰에 의해 20년 가까이 경찰 감시를 받는 보안관찰 대상으로 지정·재지정됐다.
법무부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는 이날 정례회의에서 강씨의 보안관찰처분 면제 결정을 내렸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이 결정을 받아들여 강씨에게 보안관찰처분 면제를 최종 통보하도록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강씨의 주거와 직업이 일정하고 재범의 위험성이 없는 점을 고려해 위원회가 이런 판단을 했다”고 설명했다.
강씨는 1980년 고교 3학년 때 계엄군의 진압 작전 전날 옛 전남도청을 빠져나왔던 5·18 시민군이었다. 이후 전남대 의대에 진학했고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꼽히는 ‘구미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한장짜리 전향서 작성을 거부해 14년 동안 감옥에 갇혔던 그는 1999년 2월 김대중 전 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
하지만 강씨는 국가보안법이나 내란음모 혐의로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보안관찰 처분 대상으로 삼는다는 보안관찰법에 따라 보안관찰 대상자가 됐다. 보안관찰법은 보안관찰 처분 기간을 2년으로 하되, 검사의 갱신 청구를 받은 법무부 장관은 보안관찰처분심의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그 기간을 갱신할 수 있도록 했다. 법무부는 1999년 석방 이후 강씨를 ‘재범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보안관찰 처분 대상자로 7차례나 갱신했다. 보안관찰 처분이 내려지면 3개월마다 관할 경찰서에 자신의 주요 활동, 여행지와 동행자, 이사 예정지 등을 신고해야 한다.
강씨는 이 같은 법 조항이 개인의 기본권을 제약한다며 신고의무를 따르지 않다가 2002년과 2010년 벌금 50만원과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2016년 12월 다시 신고의무 불이행으로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지만, 지난 2월 서울중앙지법은 보안관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 역시 항소하지 않아 무죄가 확정됐다.
출소 후 대학에 복학해 2004년 뒤늦게 졸업한 강씨는 가정의학 전문의가 됐다. 5·18 국가폭력 생존자와 가족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설립된 광주트라우마센터의 초대 센터장을 지냈고 현재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를 맡고 있다. 강씨는 “늦었지만 정의가 실현된 데 의미가 있다. 어려운 결정을 내린 법무부에도 감사드린다”고 했다.
김양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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