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화재로 2명이 숨진 서울 강동구 천호동 한 성매매 업소 건물 옆쪽 2층 창문의 모습. 떨어져 나간 쇠창살이 보인다. 사진 이주빈 기자
16분만에 꺼진 불에 2명이 숨지고 2명은 중태에 빠졌다. 22일 오전 발생한 서울 강동구 천호동 성매매 업소 화재로 숨진 여성들의 죽음을 애도하며 여성단체들이 엄정한 수사와 진상규명, 피해 여성들에 대한 즉각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나섰다. 불이 난 2층짜리 건물이 자리 잡은 곳은 이른바 ‘천호동 텍사스촌’이라고 불리는 성매매 집결지로 재개발이 예정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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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등으로 꾸려진 ‘천호동 성매매집결지 화재사건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는 24일 성명서를 내고 “성매매 집결지 화재 참극이 또다시 되풀이되었다”며 “국가와 사회가 방치한 성 착취의 현장에서 얼마나 더 많은 여성들의 죽음이 필요한 것인가”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22일 오전 화재로 2명이 숨진 서울 강동구 천호동 한 성매매 업소. 사진 이주빈 기자
공대위는 “성매매를 여성에 대한 폭력이자 착취로 규정하고 불법화해 온 대한민국에서 성매매 집결지의 존재는 모순 그 자체”라며 △엄중한 조사와 진상규명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 등 종합대책 마련 △성매매 집결지와 성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전담팀 구성을 요구했다.
공대위는 성명서에서 “이 사건은 철거예정인 노후한 건축물에서 일어난 우발적인 비극이 아니라 여성들을 위험에 몰아넣는 착취적인 공간에서 일어난 예정된 비극”이라고 강조했다. “(2층) 40평도 되지 않는 면적에 방 6개가 좌우로 밀집해 붙어 있는 구조는 성매매 업소의 전형적인 형태”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24일 화재 현장을 둘러본 정미례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대표도 “1층에서 불이 나면 2층 어딘가 나갈 수 있는 데가 있어야 했는데 영업방이자 여성들의 숙소이기도 했던 2층 방 창문은 너무 작고 쇠창살에 막혀 있어 탈출구 역할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1층에도 영업방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사실상 대피로 역할을 할 수 없었다”며 “불이 나면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공대위는 “철거가 코앞인데도 업주들은 자신들의 영업권을 행사하며 더 많은 이주비를 받기 위해 여성들을 볼모로 삼고 있었다”면서 이와 함께 지자체와 경찰 역시 책임이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대위는 “공권력은 성매매 집결지를 폐쇄하기 위해 여성들의 탈성매매를 위한 지원과 불법적 이익 환수 등 수요 차단을 포함한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기보다는 성매매 집결지 건물주들에게 재개발의 이익이 돌아가는 부동산 개발사업에만 급급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공대위는 “뉴스와 댓글은 이런 상황을 외면하고 성매매 집결지 업주들의 대표 목소리를 여과 없이 인용하고 있다”고 우려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치 성매매 여성들을 위해 업주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은 것처럼, 성매매 집결지를 양성화하면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처럼, 여성들의 죽음조차 재물 삼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고 업주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이들처럼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한편, 서울 강동경찰서와 강동소방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등 관계자 30명은 24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2시까지 화재 현장 2차 합동 감식을 벌였다. 2차 감식 결과 불은 연탄난로가 있던 1층 홀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찰은 “현장에서 수거한 전선 등 증거물에 대한 국과수 감정 결과를 종합해 최종 발화지점과 화재 원인을 규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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