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훈련소에서 법회를 하는 모습. 대한불교조계종 군종특별교구 누리집 갈무리.
조계종 신도로 군종장교 가운데 불교분야 군종 업무를 수행하는 ‘군종법사’였던 ㄱ씨는 2008년 양가 부모의 허락을 받아 지금의 부인과 결혼을 약속했다. 당시 조계종의 헌법인 ‘종헌’은 군종법사의 결혼을 인정했기 때문에 결혼이 가능했다. ㄱ씨와 약혼자는 결혼 뒤 함께 외국으로 연수를 가려 했다. 하지만 금전적인 문제로 잠시 결혼을 미루고 ㄱ씨만 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다.
문제는 ㄱ씨가 유학을 떠난 직후인 2009년 3월 조계종이 ‘결혼을 금지’하는 것으로 종헌을 바꾸면서 시작됐다. 결국 같은 해 귀국한 ㄱ씨는 자녀를 임신하고 신혼 집을 마련했음에도 종헌 개정으로 인해 혼인 신고를 할 수 없게 됐다. 혼인 신고를 하지 않고 지내던 ㄱ씨 부부는 2011년 둘째를 임신했다. 둘째를 첫째처럼 미혼 부부의 자녀로 키우고 싶지 않았던 ㄱ씨 부부는 2011년 2월 혼인 신고를 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ㄱ씨는 조계종에서 태고종으로 전종했다.
하지만 ㄱ씨의 전종은 국방부의 전역처분으로 이어지게 됐다. 국방부는 2017년 1월 군종윤리위원회를 열어 ㄱ씨가 ‘현역복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군 법당 주지로서 종교 활동은 ‘조계종’ 승려에게만 인정되는데, 계율을 어긴 군종 장교가 군종 활동을 수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 이에 ㄱ씨는 ‘국방부의 현역복무 부적합 전역처분이 부당하고, 군종법사를 조계종 종단으로만 운영하는 것은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했다.
인권위는 국방부가 군종법사 선발요건을 갖춘 다른 종단을 관행적으로 배제한 채 조계종 종단으로만 운영하는 것을 ‘평등권 침해’라고 보고 국방부장관에 개선을 권고했다고 27일 밝혔다.
인권위 조사결과, 군종 장교는 약 500여명으로, 기독교는 10여개 교단에서 선발이 가능했으나 불교의 경우 1968년 이후 50여 년 동안 조계종 종단으로만 운영된 것으로 확인됐다. 각 불교 종단이 공개한 추정치에 의하면, 불교 조계종은 2350만여명, 태고종은 637만여명, 천태종은 250만여명, 진각종은 99만여명의 신도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인권위는 이 추산에 비추어 “군대 내 불교 신자가 6만6천명이라고 볼 때, 태고종이 1만여명 이상, 천태종은 6천여명 이상이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군대 내의 불자는 조계종뿐만 아니라 타 종단에서 온 이들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군종 법사는 조계종 신도로 한정된 상황을 지적한 셈이다.
인권위가 조사에 들어가자, 국방부는 다른 종단을 배제한 이유로 ‘종단 차원의 합의’를 제시했다. 국방부는 “타 종단의 진입은 교리, 의식절차 통일, 일원화된 지휘체계 확보와 시설 공동사용 곤란 등 종단 차원의 합의가 선행되어야 할 사안”이라며 “(타 종단 진입은) 군종장교운영심사위원회 의결에 따라 부결된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또 ㄱ씨의 현역복무 부적합 처분에 대해서는 ‘결혼이 이유가 아닌 능력 또는 도덕적 결함에 따른 조처’라고 밝혔다.
하지만 인권위는 특정 종단으로 운영되는 군종법사 선발요건이 ‘평등권 침해’라고 판단했다. 병역법을 보면, 군종장교의 병적편입 조건은 ‘학사학위 이상의 학위를 가진 성직자와 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대학을 다니고 있는 사람’으로 특정 종단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2014년에는 국방부가 천태종의 군종법사 진입에 대해 ‘종단 간 합의 필요’를 이유로 부결하자, 감사원이 이 사안에 대해 감사한 뒤 ‘군종법사를 조계종으로만 운영하는 것은 공무담임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이에 인권위 전원위원회는 “군종법사 운영에 이미 진입한 특정 종단의 결정권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며 “종단 간 합의의 선행조건을 이유로 자격요건을 갖춘 타 종단을 배제하는 것은 합리성이 상실된 평등권 침해에 해당하므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권위는 “천태종과 태고종이 군종장교 신규 진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도 기존 진입 종교에 대한 존중과 화합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며 “조계종도 타 종단의 군종장교 신규 진입에 대하여 특별히 반대 입장을 표하지도 않은 점을 고려하면, 국방부가 종단 간 합의를 신규 선정의 회피사유로 삼고 있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만, 인권위는 전역처분이 부당하다는 진정인의 주장에 대해서는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므로 각하를 결정했다.
임재우 기자
abbad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