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사고에서 보통 사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뚜렷하게 불성실한 진료나 조처가 아니라면 의료진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 배상책임도 물을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병원 응급실에서 환자 상태가 악화했는데도 제대로 조처를 하지 않아 아들 ㅇ씨(사망 당시 22세)가 사망했다며 ㅇ씨의 부모가 병원 쪽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ㅇ씨 부모에게 2천만원씩의 위자료를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원고패소 취지로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ㅇ씨는 2011년 2월18일 두통과 구토 증상으로 ㅎ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했다가 다음 날 새벽 같은 증상으로 다시 응급실을 찾았으나, 상태가 급속히 악화해 다른 병원으로 옮긴 뒤 혼수상태 끝에 다음 달 사망했다. ㅇ씨의 부모는 상태가 악화했는데도 ㅎ병원에서 제대로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ㅎ병원 의료진의 과실로 ㅇ씨가 사망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병원 쪽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고 원고패소로 판결했다.
2심 재판부는 “ㅎ병원 의료진이 진료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은 있지만 이런 과실과 ㅇ씨의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는 인정되지 않는다”면서도 “ㅇ씨가 두 번째로 응급실에 온 뒤 한 시간 만에 상태가 급속히 악화했는데도 이런 상태를 보고조차 하지 않고, ㅇ씨가 의식을 잃을 때까지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치료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일반인의 처지에서 참을 수 있는 한도를 넘어설 만큼 현저하게 불성실한 진료라고 볼 수 있다”며 ㅇ씨 유족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병원 쪽의 배상 의무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1심의 전문 감정의는 ㅇ씨의 증상은 전문의료진이 아닌 응급실 상황의 일반 의료진 능력으로는 진단과 치료에 한계가 있어, 즉시 관련 검사를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당직 의사에게 과실이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적절한 처치까지 치료가 3시간 정도 늦어진 것도 치명적 범실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2심의 감정의도 ㅇ씨의 악성신경이완증후군은 그런 환자를 다룬 경험이 있는 일부 전문의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질병이라는 견해를 밝혔다”면서 “이를 종합해 보면 ㅎ병원에서 적절한 치료와 검사를 지체했다고 해도, 일반인의 수인한도를 넘어설 만큼 뚜렷하게 불성실한 진료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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