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편한 용기’ 주최로 ‘제6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열리고 있다. 오연서 기자
‘홍대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에 대한 편파수사를 규탄하며 지난 5월 시작된 일명 ‘혜화역 시위’가 지난 22일 6차 시위를 마지막으로 잠정 마무리됐다. 이번 시위는 한국에서 여성 이슈로 열린 가장 대규모 시위이자 남성의 참여 자체를 금지한 새로운 형태의 시위였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가 이번 시위가 한국 사회와 한국 여성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페미니즘 시각에서 분석했다.
지난 5월 시작된 ‘불법촬영 편파수사·편파판결 규탄시위’(일명 ‘혜화역 시위’)는 부조리한 세계의 뼈대를 흔드는 여성들의 붉은 분노였다. 그동안 여성에게 가장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골방 대신, 혜화역 거리와 광화문광장이라는 공적 영역이 여성들의 분노의 무대가 되었다. 이 사회에서 사적인 존재로만 내몰려왔던 여성들이 지난 5월19일 1차 시위(혜화역)부터 6월9일(2차, 혜화역) 7월7일(3차, 혜화역) 8월4일(4차, 광화문광장) 10월6일(5차, 혜화역) 12월22일(6차, 광화문광장)까지 7개월간 6차례에 걸쳐 붉은 분노로 거리를 물들이며 자신들의 존재를 이 세계에 선포했다. 여성 단일 의제로 1차 시위 1만2천명, 2차 4만5천명, 3차 6만명, 4차 7만명, 5차 6만명, 6차 11만명 등 모두 30만명 넘는 여성의 참여를 이끈 이번 시위는 한국 여성운동사에서 사상 최대 규모이자 여성들의 정치적·사회적 연대체의 힘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역사적으로 한 획을 그은 사건이었다. 필자는 이런 점에서 이 시위를 ‘여성시위’로 부르고자 한다.
여성시위의 발단은 지난 5월 발생한 홍대 불법촬영 사건이었다. 피의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인 이 사건에서 사회적 공론화의 집중도와 언론 주목도, 수사방식과 사건처리 속도(수사 의뢰 8일 만에 구속 수사가 진행되고 피의자를 포토라인에 세운 것), 2차 가해에 대한 경찰의 태도 등이 지금껏 여성이 피해자였을 때와는 전혀 다르다는 문제의식이 확산했다. 여성이 불법촬영의 피해자일 때 가해자가 불구속 수사를 받는 비율은 97%에 이른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들은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수사기관에서 진술하는 과정에서 숱한 2차 피해를 입는 데 이어, 여성들의 피해 사실은 사회적 공분의 대상이 아닌 불법 포르노 사이트 검색어 1위가 되고 만다. 이번 시위는 이런 현실의 불평등성에 대한 강력한 비판이었다. 다시 말해,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여성 대상 폭력과 관련해 수사 단계에서부터 판결 단계는 물론 사회 인식구조 전반에 뿌리내린 남성중심성에 대한 분노였다. 이들은 여성연대체 ‘불편한 용기’를 중심으로 시위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왜 ‘붉은 분노’인가? 디지털 성폭력 피해 영상물로 인해 사회적 고립과 주변의 백안시, 나아가 죽음으로까지 내몰려야 했던 여성들, 일상의 시공간이 불법도촬 카메라에 잠식당하는 공포감에 떨어야만 했던 이들, 바로 그들이 흘려야만 했던 피에 대한 기억이자 애도행위라는 의미에서, 여성 신체 이미지를 디지털 재화로 여기며 이를 생산·판매·소비·유통해온 웹하드 카르텔에 대한 강력한 경고의 레드카드라는 의미에서 이 시위는 붉은 분노였다.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편한 용기’ 주최로 ‘제6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열리고 있다. 오연서 기자 loveletter@hani.co.kr
혜화역 시위의 의미
이번 시위의 ‘혁명성’은 크게 세가지 측면에서 이야기될 수 있다.
첫번째로 이번 시위는 ‘디지털 성폭력’이라는 단일 의제로 구성된 것이자, 남성의 참여를 제한하고 여성들의 참여로만 구성된 정치적 연대였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성들에 의한, 여성들을 위한 시위임을 명확히 정의 내린 것이다.
그런데 남성 참여를 제한한 이 시위의 조건을 남성혐오주의로 몰아가는 혐오의 프레임이 생겨났다. 이 프레임은 무엇을 겨냥하는 것이었을까? 이 프레임은 현재 가동되고 있는 여성과 남성 간의 성별 위계를 부인하고 여성시위의 공간에서만이라도 여성들의 안전을 자구책으로라도 확보하고자 하는 열망을 의도적으로 기각하려는 시도였다. 나아가 이것은 디지털 성폭력에 직간접으로 복무하고 있는 남성연대, 즉 불법촬영물을 찍는 자뿐만 아니라 이를 보는 자, 품평하는 자, 소비하는 자, 재유포하는 자, 전시하는 자의 가해자성에 대한 은폐전술이기도 했다. 남성들은 여성시위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가해자성을 성찰하고 비판함으로써, 남초 사이트와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 등에서 디지털 성폭력 피해 영상물의 링크를 공유·소비하는 이들에 대한 내부 고발자가 됨으로써 이 시위의 연대자가 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남성 참여를 제한했다는 이유로 이를 남성에 대한 ‘거역’으로 여기는 것은 이 사회의 모든 시공간을 남성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권력욕의 발로라 할 수 있다. 이 사회의 통치자는 물론 저항의 얼굴도 남성형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남성의 자리를 마련해두지 않은 여성시위는 남성사회에 대한 도전으로 읽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런 프레임에는 진보남성, 보수남성 모두가 동조했다. 여성들에게 도덕적 완벽성과 무흠결성, 정치적 올바름을 사회문화적 차원에서 더욱 강력히 요구함으로써 여성 스스로가 자기검열기제에 묶이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엄중한 잣대를 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데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과 공포감을 내면화하도록 통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성시위는 이런 압박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됐고 새롭게 변모해나갔다.
두번째로 이번 시위는 기존의 시위문법, 운동문법을 넘어섰다. 기존 운동단체와의 연결고리 없이도 20~30대 여성들 간 느슨한 익명의 연대체를 통해 운동의 동력을 키워나갔다. 이는 연령주의, 업적주의, 권위주의를 통해 조직돼왔던 기존의 시위문법, 운동문법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새로운 운동의 흐름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다. 기존 운동문법이 주최자 쪽과 참여자 쪽이 명확히 나눠지는 구도였다면 이번 시위에서는 6차례 시위 때마다 스태프(운영진)를 지원하는 이들을 새로 모았다. 이로써 주최자와 참여자 간의 유동적 변환이 가능했다. 이번 시위의 참여자였던 이들이 다음 시위의 주최자가 되는 열린 과정을 거쳐 시위에 대한 다양한 피드백을 다음 시위에 반영해나가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행돼나갔다.
나아가 권위주의에 입각한 기존의 기조연설 방식이 ‘누가 말하느냐?’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이번 시위에서 무대 위 삭발식에 참여한 익명의 여성들은 ‘무엇을 말하느냐?’에 더 집중하는 이들이었다. 귀속돼야 할 특정 단체의 깃발 없이도 거리를 가득 메운 여성들은 서로에 대한 친애와 신뢰의 양식을 시위 현장 속에서 하나하나 구축해나갔다. 5월에 시작된 여성시위는 한여름의 폭염과 태풍주의보, 한파라는 다양한 절기를 거친 7개월간의 긴 여정이었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서로에 대한 배려와 안전을 가장 먼저 고려하며 연대의 풍경을 펼쳤다. 사탕 등 당류 제품부터 한여름에는 부채나 얼음물, 한겨울에는 핫팩과 뜨거운 물 등을 서로 나눴다. 익명성에 기반한 느슨한 연대체로 구성된 시위였기에 서로는 서로에게 낯선 이들이었지만, 동시에 여성억압이라는 보편적 경험을 공유하고 저항의 기술을 함께 펼쳐내는 동지들이기도 했다. 여성들은 여러 어려움에도 6차례의 시위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기존 질서는 이미 무엇이 가능한가와 무엇이 불가능한가를 명확히 가르며, 이 사회에서 가능한 것의 조건마저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불편한 용기’를 발휘해 거리에 나온 여성들은 ‘올바름의 언어’ ‘개념녀’ 등 여성들을 한정한 가능성의 범위를 뚫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세번째로 이번 시위는 미러링이라는 풍자의 언어와 감정 분출의 장이었을 뿐 아니라 시위 때마다 성명서를 발표해 현재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정책 공백과 입법 공백을 지적하고 제도적 대안들을 제시한 장이었다. 디지털 성폭력이 일어나는 근본 원인, 즉 여성 신체 이미지를 디지털 재화로 사용한 이윤추구, 남성연대의 여성혐오의 놀이화, 웹하드 카르텔 구조 등을 밝혀내어 여성이 직면한 현실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해결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속도를 내게 만들었다. 결국 불법촬영물이 성범죄임을 각인하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공익광고가 만들어지는 등 사회적 인식 전환을 이끌어냈다. 지난달 29일에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 개정안은 불법촬영물뿐만 아니라 불법촬영물을 복제한 콘텐츠도 처벌 대상에 포함했고, 영리를 목적으로 촬영물이나 복제물을 유포한 경우에는 현행 벌금형 조항을 삭제하고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또 촬영 당시 촬영 대상자가 동의했더라도, 사후에 동의를 구하지 않고 이를 유포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했다. 자신의 신체를 자의로 찍은 촬영물이라고 해도 이를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유포하면 동일하게 처벌하는 조항도 담겼다.
대안제시와 담론장 확장도
‘불편한 용기’ 쪽은 6차례의 시위마다 성명서를 발표하며 행정적, 교육적, 사법적, 입법적 변화의 방안들을 체계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제도적 대안 마련은 물론 담론장을 확대하는 것에도 기여했다. 여성운동의 대중적 외연 확장은 물론 심화 방안까지 이끌었다고 할 수 있다. 여성가족부에 더 많은 인력과 예산 확충을 요구하며 남성중심적 정부 운영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촉구했고, 여성주의 전문가를 유치원부터 중·고등학교, 대학에까지 배치하는 페미니즘 교육정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여성들이 함께 웃고 우는 공간을 만들었을 뿐 아니라 정부의 정책과 입법의 공백을 지적하는 주장을 통해 제도와 담론의 변화도 선도해나갔다고 할 수 있다.
현재 여성들이 쓰고 있는 새로운 역사의 페이지 속 잉크는 아직 마르지 않았다. 여성혐오 사회에 근본적 변화가 없다면 여성시위는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시작을 향한 초침은 이미 움직이고 있다.
윤김지영/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
지난 2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불편한 용기’ 주최로 ‘제6차 편파판결 불법촬영 규탄시위’가 열리고 있다. 오연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