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해고자 복직과 노조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두 명의 노동자가 고공농성 중인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굴뚝농성 408+413일 굴뚝으로 가는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열리고 있다. 파인텍 노동자 홍기탁, 박준호씨는 해고자 복직과 노조 활동 보장을 요구하며 413일째 최장기 굴뚝 농성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파인텍 노동자들의 굴뚝 농성이 413일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파인텍 노동자와 모기업 스타플렉스 관계자와의 두 번째 교섭 역시 결과를 내지 못하고 이견만 확인한 채 끝났다.
이승열 민주노총 금속노조 부위원장과 차광호 파인텍지회 지회장 등 노조 쪽 대표들과 김세권 스타플렉스 대표 등 회사 쪽 관계자들은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께까지 6시간 동안 교섭을 이어갔으나 결과를 내지 못했다. 노조는 교섭에서 조합원 5명을 스타플렉스 공장에 고용해줄 것으로 요구했으나 회사는 직접 고용은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한 것을 알려졌다. 파인텍 노사는 지난 27일에도 만나 3시간 가량 논의했으나 이견만 확인한 바 있다.
교섭장에서 먼저 빠저 나온 김세권 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다”며 “오늘 스타플렉스 고용은 안 되는 것으로 이야기가 됐다. 다른 방안에 대해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뒤 자리를 떠났다. 이어 교섭장에서 나온 이승열 부위원장은 “회사 쪽이 스타플렉스로 입사는 안된다는 이야기를 지속적으로 했다”며 “대안이 있느냐는 노조의 요구에는 다른 대안을 제시하지 않았고, 오늘 구체적으로 안을 제출하지 않아 어떤 대안이 있는지 우리가 확인한 바는 없다”고 밝혔다. 이 부위원장은 “어찌됐든 올 연말 안에는 마무리 짓고자 연말 전에라도 다시 한번 대화 자리를 만들자고 했으나 구체적으로 날짜를 확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날 교섭이 시작되기 직전 김세권 대표는 ‘돌발 발언’을 쏟아내며 협상의 전망을 어둡게 했다. 김 대표는 교섭이 시작되기 직전 기자들에게 “불법을 저지르고 굴뚝에 올라가면 영웅이 되는가”라며 “평생 제조업을 했지만, 제조업하면 언론에서 악덕한 기업인으로 몬다”고 격한 발언을 쏟아냈다. 차광호 지회장은 교섭 전망에 대한 질문에 “쉽지 않다. 김세권 사장이 이런 마인드(마음)을 가지고 온다면 어떻게 풀 수 있겠는가”라며 “회사가 운영되려면 노동자가 같이 하는 것을 마련하는게 중요하다”고 답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가운데)씨가 29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열린 ‘굴뚝농성 408+413일 굴뚝으로 가는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교섭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파인텍 노동자들이 굴뚝 농성을 벌이고 있는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는 이날 오후 ‘파인텍 투쟁 승리를 위한 공동행동‘의 주최로 ‘굴뚝 농성 408+413일 굴뚝으로 가는 희망버스' 문화제가 열렸다.
900여명의 시민들이 참석한 이날 문화제에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도 연대 발언을 했다. 단상에 오른 김미숙씨는 “회사가 비정규직을 마구 유린하고 학대해도 아무 대응 못 하고 당해야 한다”며 “우리는 기업과 정부만 살 수 있는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여기도 이렇게 추운데 저 위에는 얼마나 추울지 모르겠다”면서 “우리 모두 함께 하지 않으면 이 나라는 바뀌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호규 금속노조 위원장은 회사가 노사관계를 넘어 ‘인권’의 관점에서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 발언했다. 김 위원장은 “저는 지난 (27일) 첫 번째 만남에서 김세권 대표에게 ‘노사관계를 뛰어넘어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인권에 공감해달라’고 했다. 사용자와 노동자 관계를 뛰어넘어 사람으로 봐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은 “진행되는 상황으로 볼 때 양력으로 올해 안에 끝내지는 못할 것 같은데 음력이 남았다. 음력으로 2018년이 끝날 때까지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파인젝지회 박준호 사무국장이 29일 오후 서울 목동 열병합발전소 앞에서 열린 ‘굴뚝농성 408+413일 굴뚝으로 가는 희망버스' 문화제에서 영상통화를 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고공 농성 중인 홍기탁 전 지회장과 박준호 사무장은 영상통화로 문화제 참가자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부탁했다. 홍기탁 전 지회장은 “이 긴 시간 동안 저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은 민주노조 정신”이라며 “청춘을 다 바쳤다. 민주노조 사수하자”고 구호를 외쳤다. 박준호 사무장은 “413일이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이렇게 함께 해주시는 동지들이 있어 앞만 보고 달려올 수 있었다”면서 “많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죄송스럽다. 동지들 고맙다”고 말했다.
12일째 동조단식 중인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이날 오전 김세권 대표가 기자들 앞에서 한 발언에 대해 날선 비판을 내놨다. 박 소장은 “김세권 대표가 언론 앞에 불쑥 나타나 청천벽력 같은 말을 했다. 지금 파인텍 문제를 풀자고 시민사회가 함께 마음을 먹고 있는 상황에서 겨우 나온 이런 소리나 한 것”이라며 “(김세권 대표는) 이것이 단지 파인텍을 넘는 사회적, 정치적 문제가 됐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박 소장은 “굴뚝에 있는 저 노동자들이 내려와 현장에 복귀하고 단협을 맺고 약속대로 근무하는 것이 인권”이라며 “당장 오늘은 큰 변화가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두 노동자가 포기하지 않고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요구는 반드시 실현될 것”이라고 말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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