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감시기를 동원한 음주운전 단속 현장. <한겨레> 자료사진
경찰이 음주 측정을 위해 음주 운전자를 잠시 붙잡아 둔 것이 불법체포라는 이유로 음주측정거부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음주 반응이 나타나 음주 측정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경찰관의 경찰서 동행 요구나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한다면 그것만으로 이미 음주측정거부죄에 해당한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3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음주측정을 거부해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오아무개(27)씨의 상고심에서 “위법체포 상태에서는 음주측정을 거부해도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유죄 취지로 울산지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1일 밝혔다.
재판부는 "오씨가 음주운전을 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어 단속 경찰로서는 음주측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음주감지기에서 음주 반응이 나타났으므로 음주측정기 측정은 예정돼 있었다. 오씨가 이를 위한 경찰관의 일련의 요구에 불응한다면 음주측정거부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어 "오씨가 경찰의 음주측정 요구를 피해 현장을 이탈하거나 도주함으로써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하고 이후 경찰이 그를 붙잡아 둔 행위가 범죄 성립 이후의 사정에 불과하다고 볼 것인지, 아니면 경찰의 조치가 여전히 불법체포에 해당해 음주측정거부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지 다시 판단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오씨는 지난 2016년 5월 술을 마신 상태로 운전하다가 앞서가던 차량과 시비가 붙어 서로 욕설을 하던 중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의 음주 단속을 거부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는 경찰의 음주감지기 시험에서 음주 반응이 나오자 운전하지 않았다며 스스로 순찰차에 탑승해 지구대로 가던 중 갑자기 집에 가겠다며 하차를 요구했다. 당시 경찰은 인근 지구대에 연락해 음주측정기를 현장으로 가져오도록 했고, 집에 가겠다는 오씨를 가지 못하게 5분 동안 제지했다. 음주측정기가 도착한 후 경찰은 약 10분 간격으로 4회 음주측정을 요구했지만 오씨가 거부하자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1심 재판부는 "경찰이 적법한 체포 절차를 거치지 않고 오씨를 붙잡아 둔 행위는 명백한 불법체포"라며 "불법체포 상태에서 이뤄진 음주측정 요구는 위법하므로 오씨가 이에 불응했다고 해도 음주측정거부죄를 구성하지 않는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2심 재판부도 마차가지로 "적법요건을 갖추지 않은 위법한 체포 상태에서는 음주측정 요구에 불응하더라도 음주측정거부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하급심과 달리 , 대법원은 불법체포를 따지기 이전에 이미 음주측정 거부죄가 성립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여현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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