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기복 밥상공동체복지재단 연탄은행 대표이사(오른쪽)와 백성국 연천연탄은행 대표가 31일 오후 청와대 앞 분수대에서 정부의 연탄 가격 인상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 전국 31개 지역 연탄은행을 운영하는 밥상공동체복지재단 허기복(62) 대표가 1인 시위에 나섰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은 저소득층과 영세 독거노인 등에게 무료 급식을 하고, 연탄은행을 운영하며 연탄 나눔 사업을 하는 사회복지재단이다. 허 대표가 손에 든 팻말에는 “연탄이 ‘금탄’ 됐어요. 연탄값 인상을 막아주세요. 14만 어르신과 에너지 저소득층을 위해 연탄 가격 인상은 절대로 안 됩니다”라는 글이 적혀 있었다. 허 대표를 시작으로 각 지역 연탄은행 대표와 활동가들은 다음 달 31일까지 연탄 가격 인상을 막기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연탄은행뿐 아니라 전국 시·군의회도 연탄 가격 인상 철회를 잇달아 결의하고 나섰다. 강원 원주시의회가 지난 19일 건의안을 채택한 데 이어 경기 연천군의회(12월21일)와 전북 완주군의회(12월28일)도 건의안을 채택했다. 1월에는 전북 전주시의회를 비롯해 전북 진안군의회와 대구 동구의회, 경북 포항시의회, 경기 남양주시의회 등이 결의안을 상정하기로 하는 등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분위기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 11월23일 연탄 가격을 공장가 기준 장당 534.25원에서 639원으로 19.6% 인상했다. 이에 연탄 소비자 가격은 장당 700원에서 800원으로 올랐다. 산업부는 당시 “이번 연탄 가격 인상은 한국이 2010년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에 제출한 ‘G20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계획’의 후속 조처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산업부는 그러면서 3가지 후속 조처를 밝혔다. △연탄 생산자에게 가격을 보조하는 형태의 화석연료 보조금 폐지 △저소득층 연탄사용 가구의 난방비 추가 부담이 전혀 없도록 연탄 쿠폰 지원금액을 31만3천원에서 40만6천원으로 대폭 인상 △다른 난방 연료로 교체를 희망하는 경우 보일러 교체 비용과 에너지 효율 개선을 위한 단열·창호 시공 비용 전액 지원 등이다.
‘연탄은행’을 운영하는 밥상공동체복지재단 허기복 대표가 31일 청와대 분수광장에서 연탄값 인상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은 정부의 이같은 대책이 미비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들은 우선 최근 몇 년 사이에 연탄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저소득층의 겨울나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주장하고 있다. 재단의 설명을 보면, 연탄 소비자 가격은 2003년 장당 300원이던 것이 2009년 500원까지 올랐다가, 2016년부터 매년 100원씩 올랐다. 2019년과 2020년에도 가격이 인상될 예정이다. 게다가 현재 소비자 가격은 장당 800원인데, 고지대 달동네와 농어촌 산간벽지 등에 부과되는 배달료까지 포함하면 가격은 장당 950원까지 치솟게 된다.
산업부가 연탄 쿠폰 지원금액을 40만6천원으로 올린다 해도, 저소득층이 쿠폰으로 살 수 있는 연탄은 장당 950원일 경우 427장, 장당 800원일 경우 507장 정도다. 연탄 쿠폰은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6개월 동안 쓸 수 있는데, 저소득층 가정에서 최소 4달 동안만 연탄을 쓴다고 해도 하루에 5장씩 모두 600장 정도가 필요하다. 허 대표는 “저소득층 가정에서는 열악한 주거 환경 때문에 난방이 잘 안 되어서 이른 가을인 10월부터 늦은 봄인 4월까지 7개월 정도 연탄을 땐다. 그렇게 되면 한 가구가 겨울나기에 필요한 연탄은 1050장 정도”라며 “쿠폰으로 살 수 있는 연탄을 제외하고 600장 정도를 인상된 가격으로 사야 하는 데 정부가 지원을 늘렸으니 끝났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산업부 쪽은 이에 대해 “연탄 쿠폰은 2006년 대비 연탄 가격 인상분 전체를 보조하기 위한 것”이라며 “정부 통계에 따라 한 가구가 한겨울 필요한 연탄 장수 894장에다 올해 가격과 2006년 가격 차이인 455원을 곱한 것으로, 필요 연탄 전량에 대해 인상된 가격을 보조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재단은 연탄 쿠폰 지원 가구도 늘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산업부는 2018년 연탄 쿠폰 지원 대상자가 6만 4천여 가구라고 밝혔다. 2017년에는 7만 가구였다. 하지만 재단은 2017년 기준으로 연탄 난방을 쓰는 가구가 14만 가구에 달한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가 보일러 교체 비용 등을 전액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재단은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 산업부는 올해 보일러 교체 비용 예산으로 모두 16억5천만원을 편성했는데, 이는 가구당 최대 300만원, 최대 550가구를 지원할 수 있는 예산이다. 이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재단의 지적이다. 허 대표는 “기름보일러로 교체하면 연탄값보다 비싼 기름값 때문에 기름을 땔 수가 없고, 도시가스로 교체한다고 해도 도시가스 안 들어오는 지역이 있어서 교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 보일러 교체 신청이 별로 없을 것”이라며 “(연탄 인상에 반대하는 주민의) 편지에도 ‘기름 땔 줄 몰라서 안 때냐. 돈이 없어서 못 땐다’고 적혀 있다. 결국 산업부가 겉으로는 배려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실효성 없는 정책으로 생색내기에 불과한 일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탄을 사용하는 주민들이 “연탄값 인상을 하지 말아달라”며 쓴 호소문
재단은 앞으로 연탄 가격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겠다고 밝혔다. 밥상공동체복지재단은 “연탄 가격 인상 계획은 철회되어야 한다”며 “인상하더라도 민주적인 공청회나 의견 수렴 과정을 거치고, 연탄 쿠폰제도 개혁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내년 2월 ‘연탄 가격 인상 반대 국민서명’에 동참한 이들의 명단을 청와대에 제출하겠다고 설명했다.
신민정 최하얀 박수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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