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1919 한겨레] 해 넘기도록 맹렬한 돌림감기

등록 2019-01-01 07:36수정 2019-01-01 11:34

관리부터 막벌이까지 14만명 사망
병의 기세가 세계대전 못지 않구나
<편집자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연말연시에 기온이 크게 떨어지면서 돌림감기가 다시 맹위를 떨칠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가을 조선 땅에서만 14만명의 목숨을 빼앗은 유례없는 전염병으로 인한 참혹한 사연들은 다들 자기 집에서, 이웃집에서 익히 보고 들었을 터이지만 최근에 들려온 소식들은 더욱 가슴을 친다.

소식통에 따르면 평안남도 대동군의 한 마을 이장 이아무개는 지난해 10월20일부터 한달 새 아내와 며느리, 손녀에 이르기까지 가족들을 잇따라 돌림감기로 여의게 되자 처지를 비관한 나머지 정신이상이 되어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이 감기는 급격한 전염성을 가진 탓에 한 집에서 한 사람만 걸리더라도 가족들에게 별안간 전염되기 때문에 이처럼 안타까운 사연까지 낳은 것이다. 두달 전인 11월에는 충청남도 연기군 성제리의 홍아무개라 하는 이가 독감을 앓게 되어 29살 젊은 나이에 세상을 하직하자 그의 아내 김아무개가 이튿날 간수를 많이 마시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되기도 했다. 다섯살, 세살 먹은 여자아이들이 일시에 부모를 잃고 울부짖는 모습이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고 한다.

조선총독부 집계를 보면 이번 돌림감기 피해가 얼마나 컸는지 짐작할 만하다. 2년 전인 정사년(1917) 전염병 사망자는 4만2209명이지만 지난해엔 조선 사람 1700만명 중 13만9152명이 전염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북부부터 남부까지 지역을 막론하고, 관리들부터 막벌이꾼까지 신분을 불문하고 돌림감기로 고생하는 실정이다. 경상남도 진주에선 우편배달부들까지 병에 걸려 관리들이 우편물을 배달하러 나서는가 하면, 평양에서는 인구의 반 이상이 감기를 앓았다. 각급 학교와 회사들이 쉬는 것은 물론인데다 추수철에 일꾼들이 감기로 나가떨어져 농촌에서는 익은 벼를 거두지 못한 채 방치하는 상황이 속출했다. 전 세계에서도 불과 지난가을 3개월 동안 감기와 폐렴으로 죽은 이가 600만명으로 추산될 정도니 병의 기세가 세계대전보다 맹렬하였다고 볼 법하다. 이 감기는 서반아(스페인)에서 유래하여 서반아감기라고도 하는데, 세브란스 의전에 근무하는 캐나다 사람 스코필드(석호필) 박사는 “감염이 시베리아를 통해 구라파(유럽)에서 전파되어 왔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는 듯하다”고 전했다.

그러잖아도 일제 수탈로 궁핍한 농민과 노동자들 삶에 전염병까지 덮치면서 이웃을 돕는 미풍양속마저 기대하기 힘든 시절이다. 그저 열병이 지나가도록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방문을 꼭꼭 닫아걸어 방을 덥게 하고 이열치열로 이겨내는 것 말고 뾰족한 방도가 없다.

☞‘1919 한겨레’ PDF로 보기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