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산업노조 케이비(KB)국민은행지부 조합원들이 8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열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8일 케이비(KB)국민은행 노조가 19년 만에 파업에 돌입한 가운데, 국민은행이 2014년도 입사자부터 도입한 ‘페이밴드’ 제도에 대한 20~30대 행원들의 반발이 이번 파업 참가율을 높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페이밴드란 일정 기간 안에 승진하지 못할 경우 기본급을 동결하는 제도로, 국민은행은 현재 2014년 이후 입사자만 적용받는 페이밴드를 전 직원 대상으로 확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전국금융산업노조 케이비국민은행지부는 이날 오전 9시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조합원 1만여명(노조 쪽 추산)이 참가한 가운데 파업 출정식을 열고 총파업을 선언했다. 국민은행 전체 임직원 1만7000여명 가운데 노조 조합원은 1만3700여명인데, 조합원의 최소 70%가 파업 출정식에 참여한 셈이다.
파업에 참여한 국민은행 행원들은 “이번 파업의 본질은 성과급 문제가 아니라 페이밴드 폐지와 ‘L0’ 직급(무기계약직)의 처우 문제 등 은행 내 차별 개선”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날 출정식에서 <한겨레>와 만난 30대 조합원 ㄱ씨는 “회사가 2014년 페이밴드를 처음 도입했을 때 후배들은 자신이 적용 대상자라는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근로 계약에 사인을 했다”며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젊은 행원들의 불만이 컸던 상황에서 새 노조가 이 문제를 회사에 제기하자 파업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30대 조합원 김아무개씨도 “회사의 평균 연봉이 9100만원(2017년 기준)이라는 통계는 비조합원인 지점장, 부지점장급 직원들의 억대 연봉이 합산돼 과대평가된 것”이라며 “이번 파업 참가자 가운데에는 직함만 ‘계장’, ‘대리’일뿐, 2014년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화하는 과정에서 근속 연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기본급 150만원 수준의 저임금을 받는 여성 행원들이 많다. ‘귀족 노조’라는 비판은 어처구니가 없다”고 억울해했다.
이 때문에 이번 파업을 바라보는 20~30대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파업에 따른 은행 이용 불편을 우려하는 반응과 함께 ‘파업을 지지한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의 8년 차 은행원 임아무개(33)씨는 “보통 은행에 다닌다고 하면 고액연봉을 받으면서 편하게 일하는 줄 알지만, 고객들의 ‘갑질’은 일상이고 점심시간 1시간도 보장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라며 “‘중규직’ 처우를 비롯해 이번 파업이 성과를 내면 다른 은행의 상황도 ‘상향 평준화’되지 않겠나”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제약회사에서 근무하는 김아무개(32)씨도 지난해 국민은행의 실적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점과 관련해 “회사의 실적이 좋은 만큼 직원들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박점규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집행위원은 이번 국민은행 파업을 두고 “지난 정권 10년 동안 공공부문과 금융권 등에서 ‘고액연봉’ 논란을 이유로 신입사원들에게 불리한 조처가 많이 이뤄졌다”며 “이 같은 회사 내 차별이 고착화되면서 불만이 커졌던 행원들이 지난 촛불혁명을 계기로 노동자로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이에 대해 국민은행 쪽은 “페이밴드 적용은 사쪽이 일방적으로 확대할 수 없으며 노사가 함께 합리적인 급여체계 개선안을 논의할 것”이라며 “‘L0’ 직급의 기본급은 200만원 이상”이라고 해명했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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