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11일 오전 사법농단 사태의 ‘몸통’으로 지목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마침내 검찰에 소환됐다. 전직 대법원장이 검찰 조사를 받는 건 헌정 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2017년 2월 이탄희 판사가 법원행정처의 법관사찰 지시를 거부하고 사직서를 제출한지 23개월 만이자, 지난해 6월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 7개월 만이다.
이날 오전 9시 서울 서초동 대법원 정문 앞에서 자신과 관련된 혐의들을 부인하는 취지의 ‘담벼락 성명’을 발표한 양 전 대법원장은 동쪽에 위치한 서울중앙지검 청사로 자리를 옮겨, 10분 뒤 여느 피의자와는 달리 포토라인을 그냥 지나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조사실로 향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11일 오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검찰에 출석하기 전, 대법원 앞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검사)이 양 전 대법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범죄사실)는 40여가지에 이른다. 이 가운데 일제 전범기업 강제노역 손해배상 청구소송 재판(재상고심)을 ‘박근혜 청와대’ 요청에 따라 2013년부터 5년간 지연되도록 하고 전원합의체(전합)에 회부해 전범기업 쪽 손을 들어주려 한 혐의가 핵심이다. 이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은 전범기업 쪽 대리인을 직접 만나 전합 회부 계획을 전달하고 법원행정처에 소송 서류를 감수하도록 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2012~17년 자신의 사법부 정책에 비판적인 판사들에게 불이익을 주기 위해 행정처에 ‘물의 야기 법관 인사 조처 보고’라는 이른바 ‘법관 블랙리스트’를 작성토록 해 실행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브이(V) 표시를 하는 등 직접 결재하고 서명했다는 것이 그간 검찰 조사결과다.
이 밖에도 양 전 대법원장은 △옛 통합진보당 의원 지위확인 소송 개입 △헌법재판소 내부정보 유출 △공보관실 운영비 비자금 조성 등 각종 의혹에 대부분 연루돼 있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조사를 한두차례 더 진행한 뒤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다.
김양진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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