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수형인들이 재판 다운 재판을 받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17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는 제주 4·3 당시 수형인 18명이 청구한 재심에서 사실상 무죄 취지(공소기각) 판결을 했다. 그 한 달 전인 지난 달 17일, 정광병(39·사법연수원 40기) 제주지검 검사는 재판부에 “공소기각 판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수사 과정에 명백한 잘못이 드러난 재심 사건에서도 유죄 구형을 하던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선고 뒤 <한겨레>와 만난 정 검사는 그 이유로 “재판 다운 재판”을 말했다. 그는 박금빛(36·41기), 이상후(32·변호사시험 2회) 검사 등과 지난 2년여 동안 제주 4·3 재심을 담당했다.
정 검사는 제주가 아닌 ‘육지’ 출신이다. “부끄럽지만 제주 4.3을 잘 몰랐어요. 역사소설이나 방송, 영화 소재로만 접했지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재판을 준비하면서 진상조사 보고서와 사료 등을 검토하며 이념과 공권력이란 이름 아래 무고한 분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정 검사는 ‘실체 없는 재판’과의 싸움이었다고 했다. 70여년 전 제주도민 2530명이 불법구금과 고문을 받고 절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군법회의(군사재판)를 거쳐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러나 수형인명부 외엔 관련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재심 결정을 내렸고 검찰은 항고하지 않았다. 기록이 남아있지 않는 책임을 피고인들에게 전가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판단이었다.
정 검사 등은 수형인들의 공소사실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과연 실체가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검찰 수사관, 기록연구사 등과 2박3일 ‘육지’로 출장을 떠났다. 육군본부, 국가기록원 서울기록관 등 10여곳을 뒤졌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았다. 당시 군사재판에 관여한 법무관도 세상을 떠난 뒤였다. “수형인들은 자신들이 어떤 혐의로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받아야 했는지, 왜 제대로 된 재판 없이 징역살이를 해야만 했는지 알고 싶다고 누누이 말씀하셨어요. 기록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손을 놔버릴 수 없었어요.”
정 검사 등은 이런 이유에서 수형인들에 대한 ‘피고인 신문’을 진행했다고 했다. 유죄를 입증해 처벌을 받게 하는 것도 검사의 일이지만, 억울함을 벗겨주는 것도 공익의 대표자로서 검사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정 검사는 “한번도 나라에 억울함을 호소한 적 없는 수형인들이 그간의 고통을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했다. 육지 형무소로 끌려가는 배 안에서 아들을 잃고, 그 주검을 경찰에 넘길 수밖에 없었던 오계춘(93)씨의 이야기를 들을 땐 “공권력에 의해 이들이 겪은 고통의 깊이를 가늠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눈물로 버텨오신 이들에게 법원의 이번 첫 판결이 위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정 검사는 법원의 판단에 경의를 표했다.
제주/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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