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 10주기를 맞은 20일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에서 열린 추모제에서 유가족 권명숙씨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남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면 죽인 자는 말을 해야 할 것 아닙니까.”
권명숙(57)씨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해답을 찾고 있다. 권씨의 남편 이성수씨는 용산참사 희생자 가운데 한 명이다. 용산참사는 2009년 1월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남일당 건물 옥상 망루에서 철거민들과 진압 경찰의 충돌로 큰불이 나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숨진 사건이다. 20일로 꼭 10년이 됐지만 제대로 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
“사고만 아니었으면 남편하고 한 푼을 벌어도 같이 재미나게 살고 있을 텐데… 우리가 왜 이런 고통을 받고 살아야 합니까.” 속절없이 흐르는 눈물 사이로 권씨의 가슴 속 응어리가 함께 터져 나왔다.
이날 오후 1시30분 경기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 희생자 묘역에서 ‘용산참사 10주기 희생자 추모제’가 열렸다. 당시 망루에서 탈출한 생존 철거민 9명과 유가족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추모제에는 눈발이 날리던 지난 추모제와 달리 햇살이 묘역을 비췄다. 사회를 맡은 박래군 범국민추모위원회(추모위) 집행위원장은 “10년만에 가장 따뜻한 날”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온기와 햇살이 무색하게 10주기를 맞이하는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의 표정은 무겁기만 했다.
10년이라는 세월은 그만큼 그들에게 잔혹했다. 희생자 윤용헌씨의 부인 유영숙(59)씨는 “10년이 지났지만 아이들은 아직도 아빠의 죽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아빠가 어디에 여행 간 것 같다고 하는데 그 말을 듣고 내 가슴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유씨는 아직도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고 털어놨다. 생존자 김창수(45)씨는 “함께 망루에 올랐던 우리들은 10년 전 그 불구덩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말로 지난 세월을 돌이켰다.
용산참사 10주기인 20일 오후 경기 남양주시 마석 모란공원 열사 묘역에서 추모제가 열려 유가족과 시민들이 고인들의 묘역에 헌화하고 있다. 남양주/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10년 만에 진상규명의 문이 열리기는 했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 지난해 9월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용산참사 당시 과잉진압과 여론조작이 있었음을 공식적으로 밝혀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도 진행중이다. 추모위는 “과잉진압이라는 결론이 났지만,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검찰 진상조사단 조사도 외압으로 중단되어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나설 것을 촉구했다. 권씨는 “서민들을 죽여놓고 승승장구하는 고위직 사람들을 용서할 수 없다”며 “사과한다고 했으면 이유 불문하고 유가족에게 당장 무릎을 꿇으라”고 경찰에 촉구하기도 했다.
이날 추모제에서는 전날 방영된 에스비에스(SBS) 시사프로그램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공개된 김석기 자유한국당 의원의 발언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사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이었던 김 의원은 무리한 진압의 책임자로 지목되는 인물로, 추모위는 국회에 김 의원 제명 절차를 진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희생자 양회성씨의 부인 김영덕(63)씨는 “김석기가 지금 경찰청장에 있었으면 (용산참사와) 똑같은 방법으로 진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며 “그런 자가 국회의원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희생자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75)씨 역시 “김석기가 아직도 눈을 못 떴다”고 꼬집었다. 실제 방송에서 김 의원은 제작진이 경찰청 조사위 결과에 대한 생각을 묻자 “(용산참사 당시) 경찰의 법 집행은 정당했다고 지금도 저는 그렇게 믿고 있다”고 답했다.
추모제에는 명진스님과 이정미 정의당 대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도 참석해 추모사를 읽었다. 이정미 대표는 “지난해에도 서울 장위동과 아현동에서 재개발로 세입자가 목숨을 잃었다. 용산참사는 아직도 진행중”이라며 용산참사 뒤 10년이 지나도록 변하지 않는 폭력적인 재건축과 재개발 현실을 지적했다. 이어서 이 대표는 “정부는 물론 참사 10주년을 맞아 일제히 추모의 뜻 밝힌 정당들은 내일부터라도 당장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물론, 용산의 비극 막기 위한 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용산참사10주기 범국민 추모위원회는 이날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입장’을 내고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 조사팀 재배당 및 추가 기한 연장 △독립적인 진상조사 기구를 통한 철저한 진상규명 △살인진압 지휘와 여론조작 책임자인 김석기 의원 처벌 및 국회의원직 제명 △용산특별법 제정해 철저한 진상규명과 공소시효 관계없이 책임자 처벌하는 법안 제정 등을 요구했다.
남양주/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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