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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박종철 장학금 받아 ‘역사 달력’ 만든 ‘10대 박종철’들

등록 2019-01-21 01:06수정 2019-01-21 08:07

청소년동아리 인클루드 ‘역사 달력’ 직접 제작해
현장 찾아 역사 공부하고 체험하며 스스로 그림도
직접 그린 벽화 앞에서 포즈 취하는 인클루드 회원들과 담당교사 김부일씨(맨 왼쪽).
직접 그린 벽화 앞에서 포즈 취하는 인클루드 회원들과 담당교사 김부일씨(맨 왼쪽).
“내가 당신의 처지였다면 독재정권 물러나라고 싸울 수 있었을까. 무시무시한 경찰관들에게 둘러싸여도 신념을 지킬 수 있었을까?”

신민영(19)씨는 스스로에게 물었다고 했다. “직접 남영동 대공분실을 둘러보고, 환하게 웃는 박종철 열사의 사진을 보며” 시작한 고민이다. 신씨는 지난해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제에서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로부터 ‘박종철 장학금’을 받아 역사 달력을 제작한 청소년 동아리 ‘인클루드’(Include)에서 활동하고 있다. 인클루드는 경기도 안산에 있는 청소년 공간 ‘99도씨’에 속해 있다. 이곳은 안산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민간 청소년 공간으로, 정부 지원 없이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한겨레>는 지난 18일 인클루드 회원 6명을 ‘99도씨’에서 직접 만났다.

■ “역사를 통해 현재 바라보는 관점 배워요”

2017년부터 활동하기 시작한 인클루드는 ‘세상을 담다’는 의미로 사회적 이슈와 역사적 사실을 담아 옷·배지 등을 디자인해왔다. 그러다 역사 달력을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동아리에서 역사를 공부하며 느낀 점들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직접 제작하는 과정에는 어려움이 따랐다. 달마다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그려 넣고 설명을 적기로 했는데, 이를 위해 직접 역사를 공부하고 현장을 방문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인 이들이 학교에 다니면서 따로 강연을 듣고, 역사적 현장도 방문하는 일정을 만들기가 쉽진 않았다. 기획회의에 참여해 어떤 사건을 그릴지, 어떻게 그릴지 결정하는 과정도 난항을 겪었다. 2017년 꼬박 공을 들여 2018년 완성을 목표로 했으나 해를 넘기고 말았다. 금전적인 문제도 있었다.

그런데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2018년 1월14일 박종철 열사 31주기 추모제에서 인클루드가 박종철 장학금을 받게 된 것이다. 당시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은 “역사와 시사 문제를 공부하는 동아리 학생들이 진행하는 ‘역사 달력 만들기’ 프로젝트를 지원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장학금 100만원은 이들에게 큰 힘이 됐다. 하나둘 그림을 그려 넣는 과정에서 얻는 성취감도 점점 커졌다. 이강(20)씨는 “처음엔 우리가 이걸 받아도 되나” 하는 생각도 했지만 “곧 우리 활동이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기뻤고, 달력 제작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달력에는 모두 11개의 역사적 사건과 1개의 벽화 그림이 담겼다. 1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시작으로 2월 안중근 의사 사형 선고, 3월 3·1운동, 4월 제주 4·3사건, 5월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 7월 7·4 남북공동성명, 8월 8·15 광복, 10월 10·4 남북공동선언, 11월 전태일 열사 분신, 12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가 실렸다. 9월에는 자신들이 직접 그린 벽화를 담았다.

이들은 달마다 역사적인 사건을 직접 그려 넣고 설명을 적었다. 1월 박종철 열사의 죽음을 그리기 위해서 직접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을 살펴봤다. 4월 제주 4·3사건을 그리기 위해서 제주로 ‘다크 투어리즘’(잔혹한 참상이 벌어진 역사적 장소나 재난·재해 현장을 돌아보는 여행)도 떠났다. 6월 민주항쟁을 그리는 과정에선 영화 <1987>을 보고 함께 토론도 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은 현수민·이강씨(왼쪽부터). 각각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꼽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은 현수민·이강씨(왼쪽부터). 각각 박종철 열사의 죽음과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를 꼽았다.
달력에는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처럼 최근 일어난 사건도 담았다. 이들은 촛불집회에 직접 참여했다. 이강씨는 “비록 최근에 일어났지만 촛불집회 또한 역사라고 생각했다”며 “부패한 정부를 감싸고 있는 촛불들이, 하나의 큰불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씨가 그린 12월 그림에서 촛불들은 거대한 불길이 돼 청와대를 감싸고 있다.

이들은 열사의 모습에 자신을 비춰보기도 했다. 김세빈(19)씨는 “6월 이한열 열사 그림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며 “이제 곧 대학생이 되는데, 열사가 우리 나이 때 그런 안타까운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와닿는다”고 말했다. 현수민(19)씨는 달력 제작을 위해 대공분실을 둘러보면서 박종철 열사를 좀 더 가깝게 느끼게 됐다고 한다. “박종철 열사는 우리랑은 다른 사람인 줄로만 알았어요. 그런데 누나에게 쓴 편지를 보니 ‘암기 과목은 잘 봤는데 국·영·수는 망쳤다’는 내용이 있었어요.” 현씨는 그 뒤로 박종철 열사를 두고 “우리 친구들처럼, 나처럼 평범한 사람이었구나. 그렇다면 나도 그 상황에서 열사처럼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는 고민을 하게 됐다고 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은 신민영·김세빈씨. 각각 제주 4·3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꼽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을 꼽은 신민영·김세빈씨. 각각 제주 4·3사건과 이한열 열사의 죽음을 꼽았다.
■ ‘스카이 캐슬’ 입시지옥 넘어, 시대와 함께 성장하기

이들은 사실 시대의 아픔을 함께한다는 점에서 벌써 열사들과 닮아 있다. 인클루드는 세월호 사건 이후 직접 그림을 그려 세월호 추모 전시에 참여했다. ‘세월호, 그 곁에 선 사람들’이란 인터뷰 기록집에 함께 하기도 했다. “저희는 안산시민이고, 청소년이었으니 세월호의 아픔을 많이 느꼈어요.” 이강씨는 12월 촛불집회 그림에 세월호를 상징하는 노란 종이배와 고래를 그려 넣었다. “이곳엔 다양한 청소년이 모여요. 하지만 누구나 4·16 앞에선 함께 가슴 아파하고 동참하죠.” 담당교사 김부일(47)씨가 덧붙였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위한 활동도 했다. 직접 티셔츠를 만들어 판매하고, 수익금을 나눔의집에 기부했다. 함께 수요집회도 참여했다. 김민상(20)씨는 “수요집회에 참석하면서 이곳이 멋진 활동을 한다는 걸 알게 됐다”고 회상했다.

인클루드 회원들은 동아리 활동을 통해 스스로 성장하고 있다고 느꼈다. “요즘 <스카이 캐슬>도 그렇고, 다들 입시에만 관심이 많잖아요. 여기선 사람들과 진지한 이야기를 나누고, 나를 알아가는 시간도 가질 수 있어요.” 현수민씨는 안산 상록수역 소녀상 건립 1주년을 맞아 공연을 직접 기획했다. 이 과정에서 자신이 공연 기획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지금 미디어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김세빈씨는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내가 어떻게 해야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를 알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신민영씨는 그림을 통해 사회적 문제들을 다뤘던 경험을 살려 공공예술 분야에서 활동하고 싶다고 했다. 신씨는 올해 디자인학과 입학을 앞두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인클루드 회원들과 담당교사 김부일씨. 뒤로는 이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보인다.
인터뷰를 마치고 환하게 웃는 인클루드 회원들과 담당교사 김부일씨. 뒤로는 이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보인다.
■ 인클루드에서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도록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을 묻는 말에 이들은 “많은 분이 달력을 구매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수줍은 듯 웃었다.

인클루드는 올해 세월호 관련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라고 했다. 안산에 세월호 벽화거리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5주기 추모제를 맞아 4·16 공모사업에도 지원할 생각이라고 했다. 웃고 있는 이들의 얼굴 뒤로 이들이 직접 그린 벽화가 보였다. 노란 바탕의 벽화 가장 위쪽에 검은 고래 한마리가 세월호를 몸에 이고 날아오르고 있었다.

달력은 청소년 열정공간 99도씨로 주문하면 된다. 1만원. (031)416-1318.

안산/글·사진 이준희 기자 givenhapp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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