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26일 서울 양천구 한 마사지업소에서 가짜 공무원 신분증을 내세워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타이 여성 마사지사들을 붙잡아 데려가는 피의자들의 모습.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팀장님, 여기 있습니다!” 지난해 11월26일 새벽 1시께 서울 양천구의 한 마사지업소. 갑자기 업소에 들이닥친 남성들이 내민 신분증에는 ‘법무부 공무원 ○○○’이라고 선명히 적혀 있었다. 이들은 방마다 돌아다니며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타이(태국) 여성 마사지사 5명을 순식간에 찾아냈다. 여성들의 신분증과 여권을 압수하고 승합차에 태운 이들은 20분을 달려 경기 고양시 일산의 한 오피스텔로 향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수갑을 채워 강제출국시키겠다.” 여성들을 감금한 채 협박이 이어졌다. 강제출국 땐 재입국이 안 된다는 사실을 여성들은 잘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번 돈은 국고에 환수해야 한다”는 말에 가지고 있던 현금과 귀금속을 모두 남성들이 내민 가방에 그대로 넣었다. 같은 날 저녁 7시30분 인천공항 출국장, 여성들은 남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타이행 비행기에 올랐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뺏은 돈으로 산 비행기표였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위조한 공무원증으로 출입국사무소 직원을 사칭한 뒤 미등록 이주노동자인 타이 여성들을 협박해 1080만원 상당의 현금과 귀금속을 빼앗고 출국시킨 혐의(공동감금·공동공갈·특수강도)로 한국인 4명과 타이인 1명 등 일당 5명을 붙잡아 이 가운데 박아무개(33)씨 등 4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경찰은 일당 가운데 미등록 이주여성들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 타이 여성은 강제출국시켰다고 밝혔다.
피의자들이 만든 가짜 공무원증.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 제공
범행은 치밀하고 대범했다. 타이 여성들을 상대로 출입국 브로커로 일하다 여성들을 직접 고용해 불법 마사지업소를 운영하기도 한 피의자들은 이 여성들이 보통 월급을 현금으로 보관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우선 인터넷을 검색해 찾은 법무부 공무원증을 프린트한 뒤 본인 사진을 붙여 코팅해 가짜 공무원증을 만들었다. 타이말로 된 ‘자진출국 안내문’과 ‘진술서’ 등 서류도 준비했다. 돈을 뺏은 뒤 어떻게 비행기표를 사서 여성들을 내보낼지에 대해 적은 범행 노트도 발견됐다. 피의자들은 팀장, 단속원, 운전자 등으로 역할을 구분한 뒤 팀장을 맡은 박씨를 꼬박꼬박 “팀장님”이라고 부르며 공무원처럼 행세했다. ‘가짜 단속’ 중 업소에 손님이 찾아오자 “출입국 불법체류자 단속중입니다”라며 태연히 돌려보내기도 했다.
경찰은 이들이 범행 며칠 뒤 또 다른 타이 여성을 모텔에 감금해 돈을 뺏은 혐의도 포착했다. 이 여성은 모텔에서 잠든 척하다가 도망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추가 범행이 있을 것으로 보고 여죄를 수사 중이다.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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