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이 31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빈소에 조문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이자 평화운동가였던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에는 피우진 국가보훈처장 등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3일째 이어졌다. 일본과 미국 등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기 위해 활동했던 시민들도 김 할머니와의 마지막 인사를 나누기 위해 빈소를 찾았다.
피 처장은 이날 오전 10시께 김 할머니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했다. 조문을 마치고 나서는 길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난 피 처장은 이 할머니의 두 손을 맞잡고 “할머니, 건강하셔야 해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이에 이 할머니는 “기도 많이 해주세요”라고 답했다.
신지예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도 이날 오전 김 할머니 빈소를 찾았다. 신 위원장은 “김복동 할머니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전역의 여성들에게 큰 빛이었고, 여성 인권 운동의 길을 여신 분인 만큼 마지막 가시는 길에 꼭 인사를 드리고 싶어 왔다”고 말했다.
배우 김희애씨도 이날 낮 12시께 김 할머니를 조문했다. 김씨는 지난해 1992~1998년 ‘관부재판’(김학순 할머니 등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이 입은 피해에 대한 공식 사죄를 요구한 재판) 실화를 다룬 영화 <허스토리>에 원고단 단장 역할로 출연했다. 김씨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더 관심을 갖게 됐고, 김 할머니의 이야기도 알게 됐다”며 “몸도 아프신데 마지막까지 수요집회 등에 나오셨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 역시 빈소를 찾아 “자신의 모든 것을 드러내면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알렸던 김 할머니를 제대로 뒷받침 해드리지 못한 데 대해 정부 관계자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며 “일본 정부의 진정한 반성과 사죄를 이끌어내는 것이 김 할머니가 저희한테 반드시 이뤄내라고 요청하신 숙제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전날인 30일 밤 10시께에는 지난해 안태근 전 검사장의 성폭력을 고발해 ‘미투’ 운동의 시작을 알렸던 서지현 검사가 김 할머니의 빈소를 찾았다. 서 검사는 지난 29일 오전 국회 당 대표 회의실에서 열린 ‘서지현 검사 #미투 1년 지금까지의 변화 그리고 나아가야 할 방향 좌담회’에 참석해 전날 별세한 김 할머니를 추모하기도 했다.
서지현 검사가 지난 30일 밤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된 김복동 할머니 빈소를 찾아 정의기억연대 관계자들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 정의기억연대 페이스북 계정 갈무리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며 생전 김 할머니와 각별한 인연을 맺었던 시민들의 조문 행렬도 이어졌다. 2016년 위안부 문제를 알리기 위해 미국 엘에이(LA)에서 뉴욕까지 자전거 횡단을 했다는 대학생 김태우(26)씨는 “학생들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활동을 한다고 김 할머니께서 많이 격려해주셨는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마지막 인사를 드리러 왔다”며 “3년 전 친구들과 미국 자전거 횡단을 하겠다는 계획을 말씀드렸을 때 할머니께서 저희 몸이 상할까 봐 걱정을 많이 하셨다.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것보다 건강하게 돌아오는 게 더 중요하다고 당부하셨던 말이 떠오른다”고 김 할머니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재일동포로서 일본 정부의 ‘위안부’ 문제 해결을 촉구해 온 방청자(64) 간사이 네트워크 대표도 “김 할머니께 감사의 뜻을 전하러 왔다”며 이날 오전 조문을 왔다.
1990년대 초반 <한겨레>의 일본군 ‘위안부’ 보도를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아 간사이 네트워크 활동을 시작했다는 방 대표는 “김 할머니는 제가 재일동포로서 또 여성으로서 긍지를 갖고 살 수 있도록 많은 힘과 격려를 해주셨던 분”이라며 “현재 일본 사회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하지만 김 할머니께서 가르쳐 주신 굳은 마음을 되새기며 앞으로 더 열심히 활동하겠다고 할머니 영정 앞에서 맹세했다”고 소회를 밝혔다.
한편, 정의기억연대는 이날 “전날인 30일 1700여명의 조문객이 김복동 할머니의 빈소를 찾아왔다”고 발표했다. 김 할머니의 노제는 1일 오전 8시30분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치러질 예정이다.
선담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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