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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엄마를 살인 청부한 딸의 고백, 딸을 용서한 엄마의 눈물

등록 2019-01-31 17:38수정 2019-02-01 11:15

“엄마가 어릴 때부터 시간 단위로 나를 감시했다”
딸과 함께 살 아파트를 구해놓은 엄마
“변명 같은 거 하지 않겠다. 엄마 미안해”
일러스트 김대중
일러스트 김대중
31일 서울남부지법 404호 법정. 어머니를 살인 청부한 서른두살 딸은 고개를 숙인 채 재판장에 걸어 들어왔다. 딸이 청부살인을 부탁했던 심부름센터 업자 예순한살 남성도 따라 들어왔다. 재판장 맨 뒷자리에서 어머니가 녹색 수의를 입은 딸을 지켜봤다. 딸의 얼굴은 수척했고, 볼은 상기됐다. 딸은 입을 열 때부터 울먹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딸을 변론하던 변호인의 눈은 빨갛게 충혈됐다. 재판장의 공기는 무겁게 내려앉았다.

존속살해예비 혐의로 구속된 전직 교사 ㄱ(32)씨는 결심 공판에서 그간 꺼내지 못했던 심정을 털어놨다. ㄱ씨는 지난해 11월 인터넷에서 검색한 심부름센터 업자 ㄴ(61)씨에게 어머니를 청부살해 해달라는 이메일을 보냈고, 6500만원을 건넨 혐의로 심부름센터 업자와 함께 지난해 말 구속돼 재판에 넘겨졌다. ㄴ씨는 청부살인을 실행에 옮기지 않았다.

이 사건은 앞서 일부 언론에서 ㄱ씨가 전직 빙상 선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사줘야 했기 때문에 돈이 필요해서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슈가 됐다. 해당 선수의 범행 연루 사실이 드러나지도 않았는데 실명부터 거론한 언론도 있었다. 하지만 ㄱ씨는 이날 그런 의혹을 전면 부정했다. ㄱ씨는 해당 선수에게 고가의 선물을 사기 위해 마구 돈을 쓴 일에 대해 “단기간에 큰돈을 쓰다 보면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 굉장히 후회스럽다. 왜 그랬을까”라고 말하면서 변호인이 “돈이 필요해서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느냐”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제가 지금까지 살면서 따뜻한 사랑을 못 받아 왔어요. 그 사람이 따뜻하게 위로해주고 받들어줘서 그 사람을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내 소유로 된 은마아파트를 담보 잡는 것만으로도 (선물) 비용을 충분히 충당할 수 있었습니다. 절대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옛날부터 쌓여온 케케묵은 감정들이 심한 우울증과 겹쳐서 한꺼번에 터진 것 같아요.”

ㄱ씨는 이어서 “옛날부터 쌓여온 케케묵은 감정”이 되레 너무 친밀했던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인했다고 털어놨다. ㄱ씨의 아버지는 늑막염으로 투병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어머니는 이후 딸을 엄하게 키웠다. ㄱ씨는 어머니의 간섭과 구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ㄱ씨는 “어떻게 친엄마를 청부살인 해달라고 하는 사람이 나인가. 미친 거 같다”고 죄를 뉘우치면서도 어릴 때부터 “엄마의 집착 때문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고 밝혔다. “굉장히 옛날부터 (엄마가 죽었으면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엄마로 인해서 어릴 때 너무 억압과 규제를 받아서 시간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을 정도였어요. (엄마는) 시간 단위로 나를 굉장히 감시하셨습니다. 제가 대학교에 가면 ‘더 좋아지겠지 풀어주겠지’ 했는데, 억압하고…. 제가 만나는 남자친구들 다 탐탁지 않게 여기시고. 그런 측면에서 사실은 엄마가 없었으면 이렇게까지 힘들거나 하지 않을 거라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전직 빙상 선수와의 관계를 어머니에게 들키는 것도 ㄱ씨에겐 공포였다. “엄마는 워낙 도덕적 잣대가 높은 분이라서 막 몰아가고 그래서 엄하게 키우고 그랬어요. 그런데 그 사람을 만난다고 하면 분명히…저를…죽이려 하실 게 뻔하게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11월 심부름센터를 검색해보니 ‘뭐든지 다, 힘들고 어려운 일 다 해줄 수 있다’는 내용의 사이트가 나왔다. ㄱ씨는 심부름센터에 이메일을 보냈다. 그러자 ㄴ씨가 ‘뭐든지 다 해줄 수 있다’는 답을 보내왔다. 그렇게 이메일을 주고받다가 살인을 청부하고 말았다. 그리고 20여일이 지났을 무렵, 딸은 청부 살인을 포기할까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지난해 12월8일 가출한 ㄱ씨를 찾은 어머니가 화를 내는 대신 “너가 살아있어서 너무 다행”이라고 말하며 안아 주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정말 처음으로 느껴보는 엄마의 따뜻함이었다”라면서 “(심부름센터 업자로부터) 다음번 메시지가 오면 ‘제발 그만 해 달라’ 보낼 생각이었는데 긴급체포가 되는 바람에…”라고 말끝을 흐리며 울먹였다.

ㄱ씨가 구속된 뒤 어머니는 자신을 죽이려 했던 딸을 위해 재판부에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어머니는 딸과 함께 살 아파트를 구해놨다고도 했다. ㄱ씨도 엄마와 함께 살고 싶다고 했다.

재판장에서 ㄱ씨는 울먹이며 입을 뗐다. “(엄마가) 매일 오고 계세요. 매일 매일 오고 계십니다. 용서를 해주시는 거 같아요. 근데 오히려 죄는 제가 지었는데 엄마가 ‘내가 받아야 할 벌을 네가 구속으로 받았구나’ 이야기하며 면회 때 많이 울고 가셨습니다. 엄마가 면회 안 오는 날이 있었는데 ‘엄마가 나를 버렸나. 힘들어서 엄마가 나를 포기한 것인가’ 두려웠습니다. 엄마를 잃게 될까 봐 너무 무서웠습니다.”

ㄱ씨는 청부살인 요청을 받아들인 심부름센터 업자 ㄴ씨의 처벌도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ㄴ씨는 실제로 청부살인을 할 생각은 없었고 ㄱ씨에게 돈만 받아가려고 했다고 진술했다. “처벌을 원하지 않습니다. 저분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정말 청부업자였으면, 지금 제가 살아있을 수도 없고 너무 끔찍한 일이 벌어졌을 텐데….”

이날 법정에선 ㄴ씨도 자신의 삶에 대해 진술했다. ㄴ씨는 중학교 2학년을 중퇴해 30여년간 가구공장 종업원으로 일했다. 가구공장을 그만두고는 건축 공사장에서 막노동을 했다가 허리 디스크에 걸렸다. 2017년 혼자 집에서 심부름센터 일을 시작했다. 결혼은 하지 않고 혼자 살았다. ㄴ씨는 법정에서 “한순간 돈에 눈이 멀어서 큰 실수를 저질렀다. 앞으로 새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성실하게 생활하겠다”고 말했다. ㄱ씨로부터 받은 돈으로 ㄴ씨는 복권을 샀다고 했다.

이날 검찰은 친모 청부살인을 요청한 ㄱ씨에게 존속살해예비 혐의를 적용해 징역 6년을 구형했다. 심부름업자 ㄴ씨에게는 실제 살해 의도가 없으면서 돈을 받아 챙긴 혐의(사기)로 징역 3년을 구형했다. 서울남부지법 3단독 정진원 판사는 선고 예정일을 2월14일이라고 밝혔다.

“엄마한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하고, 변명 같은 거 하지 않겠습니다. 엄마 미안해.” 좀처럼 눈을 마주치지 못했던 딸이 마침내 어머니를 바라봤다. 판사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은 순간이었다. 딸은 법정 뒤에 앉아서 울고 있는 어머니를 계속 바라보며 법정을 걸어나갔다. 어머니는 흐르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으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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