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는 김마리아(1892.6~1944.3) 선생을 ‘2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
선생은 일본 유학중이던 1918년 1월 미국 윌슨 대통령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고, 이듬해 1월부터 파리 강화회의가 개최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유학생들과 독립선언을 준비했다. 이 계획은 ‘2·8 독립선언’으로 이어졌고, 선생도 도쿄 여자 유학생들과 함께 참여했다. 선생은 2·8독립선언문 10여장을 닥나무 껍질로 만든 얇은 종이에 복사해 옷 속에 감춰 부산에 도착했다. 교육·기독교·천도교계의 지도자들을 만나 재일 도쿄 남녀 유학생들의 독립운동 상황을 보고하고 국내에서의 거족적인 독립운동을 촉구했다. 3·1운동 배후 지도자를 지목받아 체포되기도 했다.
노지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