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1월 기왕증(뇌전증 5급)을 앓고 있는 김아무개(58)씨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에서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이면도로를 걷다가 운행중이던 승용차 사이드미러에 부딪힌 것이다. 김씨는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5주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야간에 보행자가 많은 이면도로에서 승용차 운전자가 주변을 잘 살펴야 했는데 이를 게을리 했다”며 운전자 과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상대쪽 ㄱ보험사가 지급한 돈은 41만7천원. “장애로 거동조차 어려운데 교통사고로 골절 상해까지 입었다. 턱없이 부족하다”는 김씨는 보험사와 갈등을 겪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김씨는 경찰서로부터 소환 통보를 받았다. “김씨가 차량에 고의로 부딪친 뒤, 실제 교통사고처럼 보험처리를 해달라고 요구해 치료비를 타갔다”는 첩보가 경찰에 입수됐고, 경찰이 김씨를 사기 혐의로 조사하겠다 나선 것이다. 보험사가 경찰에 밀어넣은 첩보였다. 김씨는 편치 않은 몸을 이끌고 수 차례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를 오가야했다. 결국 사건은 ‘혐의없음’ 의견으로 검찰로 송치됐고 그해 8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며 검찰에서 ‘혐의 없음’ 판단을 받았다.
그러자 보험사는 김씨를 직접 사기 혐의로 고소하고 나섰다. 김씨가 과거 2013년 교통사고를 당해 보험사로부터 돈을 지급받은 전력을 들어 김씨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두 달 뒤 검찰은 또 한번 ‘혐의없음’ 판단을 내렸다. “김씨가 사고를 당한 것은 2013년 한 차례로, 이번 사고까지 포함하면 2년 8개월 동안 교통 사고는 두 차례에 불과하다. 이 사실만으로는 피의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다”고 설명했다. 보험사는 이에 불복해 항고까지 했지만 각하 처분을 받았다.
2016년 중순부터 2017년 1월까지 반 년 넘게 수 차례 경찰과 검찰을 오가며 조사받는 고통을 겪은 김씨는 보험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교통사고로 인한 보험비와 근거없는 고소와 첩보로 수 차례 조사를 받아 생긴 정신적 고통을 배상하라”며 1000만원의 소송을 제기했다.
이 사건을 심리한 서울서부지법 민사36단독 주한길 판사는 지난해 말 “보험사는 김씨에 교통사고로 인한 손해배상 위자료 100만원과 보험사기 고소로 인한 위자료 100만원 등 모두 2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교통사고 발생 경위와 부상 정도, 피고가 원고에 대해 동일한 내용의 보험사기 혐의로 고소를 반복한 사정, 그에 대한 불기소 결정의 내용 등을 종합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씨와 함께 소송을 진행한 유근성 변호사(대한법률구조공단)은 “김씨는 보험사의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고소로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수사까지 받는 이중의 고통을 겪었다. 이와 같은 고소권 행사가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 봐 법원이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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