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노조까지 설립하면서 뭣 하러 합니까” 양주시예술단원들이 민주당사 앞에 모인 이유

등록 2019-02-06 10:11수정 2019-02-06 21:02

지휘자 갑질 폭로했다가 연습 배제되면서 노조 만들었지만
양주시의회서 예삭 삭감하며 단원을 무더기로 해촉 사태
양주시립합창단의 2015년 정기연주희 모습.
양주시립합창단의 2015년 정기연주희 모습.
경기도 양주시립합창단 단원이었던 김민정(37)씨는 지난해 8월 말부터 2달 동안 연습실에 들어가지 못했다. 합창단 지휘자 ㄱ씨의 갑질을 고발하는 탄원서를 낸 뒤 ㄱ씨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ㄱ씨는 양주시에 김씨의 해촉 건의서를 냈고, 이후 연습실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김씨가 연습실에서 쫓겨난 사이 다른 합창단원에게는 지휘자 ㄱ씨의 욕설과 협박이 이어졌다. 지난해 8월28일 ㄱ씨는 연습실에서 “여러분들의 쿠데타는 실패했어. 그럼 나가야지. 어?”라며 “(탄원서) 마지막 문구, ○○○지휘자가 아니야. 지휘자 ○○○. 내가 친구야? 상놈의 XX”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 안 나가게 됐어. 그럼 사인한 사람들이 나가야지”라며 “여기 먹을 게 뭐 있다고 붙어 있나. 뭐하는 거야. 이게! 안 부끄러워?”라고 소리쳤다.

김씨에게 ㄱ씨는 상식선을 넘었던 지휘자로 기억된다. ㄱ씨는 시민들이 다 보는 곳에서 리허설하는 데도 소리를 지르기거나 막말을 했다. “당신들이 프로야? 음악을 할 줄 모르네? 학교에서 뭘 배운 건가?”라고 말했다. 소프라노 파트장에게 전화로 자신의 행동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하면 되는지 지시하기도 했다. △웃긴 내용을 말하면 웃어라 △꾸짖으면 쫄지말고 고개를 끄덕거려라 △고개 푹 숙이면서 슬금슬금 다니지 말라 △무조건 자신에게 인사하라.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물갈이'될 수도 있다는 협박도 했다. 소프라노 파트장은 이를 일일이 적어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시 사항이라며 전달해야 했다. 그 이후 4명의 합창단원이 지휘자 탄원서를 냈고, 4명 중 2명은 합창단을 그만뒀다.

2017년 7월 소프라노 파트장이 양주시립합창단 지휘자 ㄱ씨로가 말한 내용을 적은 메모. 해당 단원은 전화 내용을 메모해서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휘자의 지시사항'이라며 공지했다.
2017년 7월 소프라노 파트장이 양주시립합창단 지휘자 ㄱ씨로가 말한 내용을 적은 메모. 해당 단원은 전화 내용을 메모해서 단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지휘자의 지시사항'이라며 공지했다.
결국 해고 위기에 몰린 김씨는 지난해 9월18일 양주시립합창단 20여명과 함께 민주노총 소속 공공운수노조 산하의 노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러자 양주시립교향악단에서도 노조 설립에 동의하는 단원 7명이 조합에 가입했다. 교향악단 지휘자 ㄴ씨도 양주시청에 서류상의 보고 없이 사적으로 단원들을 공연에 동원하는 등 문제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를 문제로 삼았던 수석단원은 지휘자에 의해 일반단원으로 강등되기도 했다. ㄴ씨는 표면상 수석단원을 일반단원으로 강등한 이유에 대해 “리허설을 하는데 손톱을 깎았다”는 점을 들었다.

갑질에 저항하고 해고되지 않으려 노동조합을 만든 양주시 예술단원에게 돌아온 것은 집단 해고였다. 지난해 12월18일 양주시의회는 합창단과 교향악단의 2019년 운영 예산 7억5천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양주시도 같은달 26일 해촉통보 공문을 연습실 게시판에 붙이며 예술단원의 해고를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2019년 1월1일부터 양주시립예술단 60명 단원이 해고된다는 내용이었다.

집단해고 과정에서 시의회 의원들은 노조 탄압 발언을 일삼았다. 더불어민주당 양주시의회 황영희 의원은 지난해 11월16일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우리 양주시가 시립합창단과 교향악단을 운영하면서 노조까지 설립해서 그 예산을 세워서 해야 하냐. 그게 문제다. 노조까지 설립하면서 이거 교향악단하고 시립합창단을 뭣 하러 합니까?”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 양주시의회 김종길 의원은 지난해 12월7일 제300회 정례회에서 노무사 수임료를 언급하며 “이거 합창단 하지 말아야 되잖아요. 이거 왜 해요. 양주시에서 (양주시립예술단이) 어떤 일을 하길래? 노조나 결성한다는 그런 사람들에게 왜 (예산이) 필요해요. 필요 없지”라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오전 양주시립예술단이 금속노조 서울지부가 주관한 ‘서울/경기지역 투쟁사업장 문제해결 촉구 공동 기자회견, 소리없는 일자리 학살을 멈춰라’에 신영프레시젼분회·성진씨에스분회·레이테크코리아와 함께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있다. 이정규 기자.
지난달 30일 오전 양주시립예술단이 금속노조 서울지부가 주관한 ‘서울/경기지역 투쟁사업장 문제해결 촉구 공동 기자회견, 소리없는 일자리 학살을 멈춰라’에 신영프레시젼분회·성진씨에스분회·레이테크코리아와 함께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 모여있다. 이정규 기자.
해고된 지 한 달여가 지난 30일 악기를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예술단원 22명이 검정 마스크를 쓰고 얼굴은 손팻말로 가린 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양주시립합창단 단원이었던 김민정씨는 민주당에 책임을 물었다. “예술단 운영을 정상화하기보다 노조를 탄압하고 예산을 삭감해서 단원을 집단해고시킨 것이다. 양주시장은 민주당원이고 시의원은 8명 중 6명이 민주당이다. 지금 양주시는 대통령의 청년일자리 문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함께 잘 사는 정부 정책에 역행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양주시립교향악단 단원 송수진(30)씨는 “1970년대 이야기도 아니고, 술자리 이야기도 아니다. 대통령도 노동조합 할 권리를 이야기하는 이 시대에 시의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며 “노동조합에 대한 공공연한 혐오가 음악인들에 대한 해고로 이어진 것이다. 헌법이 보장한 노동조합을 만들 권리는 양주시의회에서 휴짓조각이 되어버렸다”고 했다.

양주시립예술단의 고용책임이 있는 양주시의회와 양주시는 서로 책임을 미뤘다. “노조까지 설립하면서 이거 교향악단하고 시립합창단을 뭣 하러 합니까?”라고 발언했던 더불어민주당 양주시의회 황영희 의원은 “(당시 발언은 노조혐오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라며 “교향악단과 합창단 지휘자와 담당자 사이가 서로 협의가 잘 안 되어 협의를 잘 해라는 뜻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의회에서 결정한 것은 예산 삭감이다. 해고는 시에서 시킨 것”이라며 “나는 예산을 세워달라 얘기했다. 시에서 예산을 세워야 우리가 논의를 한다. (그러면 다시 논의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양주시 문화관광과 양재혁 문화예술팀장은 “(해고는) 의회에서 논의한 과정에서 된 것이다. 우리 재정, 정부의 사업효과나 사업의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의회가 판단한 것이고, 시는 의회의 판단을 따른 것”이라고 해명했다. 양 팀장은 이어 “우리가 계약서를 써서 (양주시립예술단을 고용)한 것이 아니고, 오디션을 봐서 위촉한 것이다. 계약에 의한 것이 아니니 해촉이라는 말을 써달라”라고 덧붙였다.

양주시립합창단과 시립교향악단은 2003년과 2009년 각각 설립됐다. 합창단 25명, 교향악단 35명 등 60명으로 꾸려진 예술단원은 비정규직으로 월급 50만~60만원을 받으며 일해왔다. 일자리가 갑자기 끊긴 한 단원은 택배상하차 업무를 시작했다고 한다. 양주시립합창단 단원 김민정씨는 2011년도에 입사한 8년 차 단원이었다. 그는 양주시립예술단이 좋아 지난해 결혼을 한 뒤 양주에 집을 얻었다고 했다.

“월 50만원이면 안 벌고 말지라고 말하겠지만 제게는 50만원이 문제가 아니에요. 여기 단체에 애정이 있습니다. 단원들과 함께 즐겁게 음악하고 시민을 위해 연주하고 싶어요.”

이정규 기자 j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