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자위왕 찬우박’ 구독자를 중심으로 한 남성 100여명이 1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준희 기자
16일 오후 6시 서울역 앞 광장. 10대와 20대 중심의 남성 100여명이 촛불과 손팻말을 들고 모였다. 이들이 들고 있는 손팻말에는 ‘‘야동 차단’ 내걸고 접속기록 들여다보겠다고?!’ ‘사생활을 감시받는 ‘중국몽’은 국민의 바람이 아닙니다’ ‘바바리맨 잡자고 바바리를 못 입게 하지 마시란 말입니다’와 같은 글이 적혀 있었다.
앞서 정부는 지난 12일 인터넷상 유해정보 차단을 위해 ‘서버네임인디케이션(SNI) 필드차단 방식’을 이용한 웹사이트 차단 기술을 도입했다. 이에 따라 유명 국외 성인 사이트 등 정부가 불법으로 규정한 웹사이트 접속이 이날부터 무더기로 차단됐다. SNI는 웹사이트 접속 과정에 적용되는 표준 기술을 가리킨다. 접속 과정에서 주고받는 서버 이름(웹사이트 주소)이 암호화가 되지 않고 그대로 노출된다는 점을 노려 당국이 차단에 나선 것이다. 기존에 당국이 사용하던 ‘URL 차단’은 보안 프로토콜인 ‘https’를 주소창에 쓰는 방식으로 간단히 뚫린다. 지난해 10월 도입된 ‘DNS(도메인네임서버) 차단’ 방식도 DNS 주소 변경 등으로 우회가 가능하다. 정부가 SNI 필드차단이라는 더 강력한 방식을 쓰게 된 까닭이다.
이날 집회는 유튜브에서 ‘리얼돌’과 성인용품 등에 대해 방송하는 유튜버 박찬우(31)씨가 주최했다. 박씨의 유튜브 채널 ‘자위왕 찬우박’은 구독자가 7만4300여명에 이른다. 박씨는 집회에서 “방송통신위원회는 감청이 아니라고 하지만 인터넷에서 국가의 통제권이 강화되는 건 명백하다”며 “일부 언론 보도에 저희가 야동 때문에 시위를 했다고 나오던데, 우리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중국, 북한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시위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박씨가 집회 참가자들에게 “오늘 우리 야동 때문에 모인 거 아니잖아요”라고 말하자 일부에서 “맞습니다”라는 말이 나오면서 한바탕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유튜브 채널 ‘자위왕 찬우박’ 구독자를 중심으로 한 남성 100여명이 16일 오후 서울역 광장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준희 기자
집회에 나온 한 참가자는 “중국은 에스엔에스(SNS) 검열을 할 수 있고 말을 잘못하면 끌려간다. 이게 우리나라의 미래가 될 수 있다는 게 두려워서 여기 왔다”며 “미국에서 금주령을 했을 때 사람들이 술 안 마셨느냐. 기본적인 인권이나 표현의 자유나 욕망을 차단하는 것은 절대로 하면 안 될 짓이다. 오히려 범죄의 수법이 더 고도화되고 유통의 수법을 판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여러분도 공부해야 한다. (정부의 이번 조처는) a가 b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정부가 무슨 편지를 보냈는지 보는 것과 다름없다”며 “정부가 불법사이트나 이런 걸 차단하게 되면 문제없지만, 정부가 어떤 목적으로 악용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정부를 비판하는 사이트를 들어갈 때마다 차단한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끼치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다르다. 김승주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기술적으로 봤을 때 (정부의 차단 방식이) 기존의 차단 방식보다 향상된 건 사실이지만, 그렇게 변하는 건 없다고 본다. 사람들이 패킷 감청이라고 하는데 패킷 감청과는 완전 다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우리가 검열이라고 하려면 크게 두 가지 방식이 있다. 하나는 편지 겉봉에 주소를 보고 필터링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편지 뜯어서 내용물 보고 검열하는 것이다. 이번에 강화된 SNI 차단 방식도 편지 겉봉 보고 차단하는 방식이고 그건 기존의 DNS 차단 방식도 마찬가지다. 편지 뜯어서 안의 내용물을 보겠다는 게 아니다”라며 “주소만 보고 차단하는 것을 사생활 침해라고 본다면, 기존의 DNS 차단 방식 때부터 항의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날 집회에는 ‘곰탕집 성추행 사건’ 등 잇따른 성추행 사건에서 남성들에게 실형이 선고되고 있는 사회에 대해 비판하고 있는 ‘당신의 가족과 당신의 삶을 지키기 위하여’(당당위) 집회에 여러 번 참석했다는 발언자도 있었다. (
▶관련 기사 : ‘곰탕집 성추행’ 집회 참가자들 “유튜브 보고 나왔다”) 이 발언자는 “20대 남성들은 바보가 아니다. 우리 남성들이 언젠가 정부를 심판할 것”이라며 “여기가 중국입니까 북한입니까 사회주의 공산주의입니까”라고 말했다. 경기도 광명에서 왔다는 김아무개씨는 “친구가 ‘너는 야동 하나 보려고 서울 집회에 가냐’고 했는데, 나는 부끄럽지 않다”며 “내 나라 내 땅에서 잘못된 거 지적하고 내 얘기 내가 한다는데 뭐가 문제냐”라고 말했다.
충남 천안에서 왔다는 고아무개씨는 “다 큰 성인이 왜 성인물을 못 봅니까. 이상하지 않습니까. 다른 소리 주절거리지 말고 포르노 합법화하라”라며 “포르노 합법화로 정상 촬영물과 불법 촬영물을 구분하도록 교육하자”라고 말했다. 경남 밀양에서 왔다는 한 참가자는 “문재인 대통령 각하, 저희는 즐기고 싶습니다. 저희가 즐기는 걸 방해하지 마세요. 저희도 즐길 수 있는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문화비평가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에 대해 “이번 사안 역시 일정한 표현과 관련된 여러 가지 규제들을 어느 선까지 해야 하느냐, 다시 말하면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내용이 무엇인가에 관해 결정해야 하는 이슈다. 집회에 나온 분들처럼 절대적인 표현의 자유를 주장하면서 국가가 규제하지 않더라도 시장의 논리에 의해서 성을 착취하는 유해정보들이 자연스럽게 걸러질 수 있다고 말하는 건 환상”이라며 “우리보다 더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고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하는 유럽 같은 경우에도 불법 다운로드와 관련해서 경찰이 로그 파일을 열어볼 수 있는 권력까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생활 보호라는 건 국가라는 권력 앞에 개인이 약자이기 때문에 그걸 지켜야 한다는 근대 자유주의의 원칙에 따른 것인데, 이번 사안은 개인의 프라이버시 문제가 아니다”라며 “최근의 페미니즘 운동이 보여주고 있는 게 남성의 일반적 콘텐츠 소비에 문제가 많다는 얘기다. 그만큼 기존의 표현의 자유 절대론은 남성과 권력, 부자들 중심이었다. 법을 만들어 강자가 약자를 탄압하지 못하도록 만들듯이, 표현의 자유도 최소한 사회적 약자 보호라는 원칙 아래에서 지켜지도록 해야 한다는 시민 사회의 공론에 따라 나온 게 이번 규제”라고 강조했다.
이준희 이주빈 기자
givenhappy@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