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 위장하고 관헌 따돌린 장덕수
위장시 사용한 일본 이름이 공교롭게
살인 용의자와 동명이라 인천서 체포
위장시 사용한 일본 이름이 공교롭게
살인 용의자와 동명이라 인천서 체포
◆지지리 운도 없는 장덕수(25)씨.
<편집자 주> 올해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입니다. 역사적인 해를 맞아 <한겨레>는 독자 여러분을 100년 전인 기미년(1919)의 오늘로 초대하려 합니다. 살아 숨쉬는 독립운동가, 우리를 닮은 장삼이사들을 함께 만나고 오늘의 역사를 닮은 어제의 역사를 함께 써나가려 합니다. <한겨레>와 함께 기미년 1919년으로 시간여행을 떠날 준비, 되셨습니까?
도움말: 장덕수는 ‘재외 불령선인’(불온한 조선인)으로서 3·1운동을 배후에서 주모하였다는 이유로 나중에 전남 신안 하의도에 유배된다. 1919년 11월 그를 전적으로 신뢰했던 여운형이 일본 경찰과 담판에 나선 뒤에야 석방된다.
△참고문헌
이경남, <설산 장덕수>(동아일보사·1981)
일본 외무성, ‘조선민족운동’, <독립운동사자료집 9: 임시정부사자료집>
강덕상, <여운형 평전 1>(역사비평사·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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