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공권력에 의해 타지로 끌려가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70년 만에 사실상 무죄를 인정받았다. 17일 오후 제주지방법원에서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로 사실상 무죄를 선고받은 제주 4·3 생존 수형인 18명이 만세를 부르고 있다. 제주/ 김봉규 선임기자 bong9@hani.co.kr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로 70년 만에 무죄 판단을 받은 제주 4·3사건 수형인들이 국가를 상대로 ‘불법 구금’에 대한 형사보상금 청구 절차에 나선다.
22일 제주 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와 수형인들의 법률대리를 맡는 임재성·김세은 변호사(법무법인 해마루)는 제주지법을 찾아 제주 4·3사건 생존 수형인의 과거 ‘불법 구금’ 피해에 대한 형사보상 청구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제주지법이 내린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문’을 법무부 홈페이지에 게재해달라는 청구서도 제주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임재성 변호사는 검찰에 제출하는 형사보상 청구서에서 “제주지법의 공소기각 판결 과정에서 수형인들의 공소 사실에 부합하는 어떠한 증거도 제출되지 않았다. 설사 공소 기각될 사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한 범죄사실이 전혀 증명되지 않아 무죄가 선고됐을 것이 명백하다”고 밝혔다. 형사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제26조)에 따르면, 공소 기각 판결이 확정된 피고인의 재판에서 공소 기각 판단을 내릴 만한 사유가 없었다 하더라도 무죄 판단을 받을만한 사유가 있다면, 과거 구금에 대한 보상을 국가에 청구할 수 있다.
과거 제주 4·3 수형인들이 받은 법원의 확정 판결과 관련한 공소장, 판결문 등 소송 기록은 남아있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재심 과정에서 검찰은 “공소사실을 입증할 기록을 보관할만한 기관 10곳을 확인했지만, 공소사실을 알 수 있을만한 유의미한 기록을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어떤 죄도 짓지 않았지만 억울하게 체포된 뒤 폭행·고문 등 가혹행위를 당하고 무고한 옥살이를 했다’는 수형인의 진술이 전부였다. 다만, 제주 4·3 수형인들이 실제 형 집행을 당했다는 기록 또한 거의 남아있지 않은 만큼, 도민연대와 법률대리인은 수형인들의 불법 구금 기간을 확인할 수 있는 간접 증거들을 모아 이를 증명할 계획이다. 국가에 청구할 형사보상금 금액도 “당시 불법구금과 가혹행위를 당한 점, 당시 확정판결로 인해 70년 가까이 폭도·빨갱이라는 누명 속에서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점” 등을 종합해 정했다.
지난달 17일 제주지법 형사2부(재판장 제갈창)는 1948~49년 제주 4·3 당시 내란죄 등으로 군법회의(군사재판)에 넘겨져 징역 1~20년형을 살았던 수형인 18명이 낸 재심 재판에서 공소 기각 판결을 내렸다. 2017년 4월 생존 수형인들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 뒤 1년 9개월 만에 받아든 결과다. 재판부는 수형인들의 범죄사실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도 않은 채 위법한 절차에 의해 재판에 회부한 만큼 공소제기 자체가 무효라고 밝혔다. 공소기각 판결은 소송 조건에 문제가 있어 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소송을 종결시키는 것이다.
당시 재판부는 제주 4·3사건 당시 수형인들의 공소사실을 특정할 수 없고 군법회의 회부 절차도 준수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재판부는 “수형인 명부, 군집행지휘서 등 관련 문서에는 죄명과 적용 법조만 기재돼 있을 뿐 당시 어떠한 공소사실로 군법회의를 받게 됐는지 확인할 공소장이나 판결문이 없다. 피고인들은 일관되게 자신들이 어떠한 범죄사실로 재판을 받았는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4·3 당시 군법회의가 단기간에 2530명에게 유죄 판결을 내린 것에 비춰볼 때 제대로 된 수사나 재판은 없었거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단기간에 그와 같은 다수의 사람을 집단적으로 군법회의에 회부하면서 예심조사나 기소장 등본 송달 절차가 제대로 이뤄졌을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법원의 공소기각 판결은 확정됐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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