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수사 가능성 제기…검찰은 “신뢰할수 없다” 반발
민청학련 고문·기회수사 고백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이종수)는 1991년 5월8일 분신자살한 전국민족민주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당시 26살)씨의 유서가 김씨 본인이 쓴 것으로 보인다고 16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당시 전민련 총무부장 강기훈(40)씨가 이를 대필했다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와 검찰 수사가 잘못됐다고 밝혔다.
이번 사건에 대해 국가기관이 조작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진상을 규명을 요구하는 여론이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위는 16일 경찰청에서 열린 중간 조사결과 발표에서 “사건기록에 있는 김씨 및 강씨의 필적, 과거사위가 올해 입수한 김씨의 노트 등을 비교한 결과, 유서는 김씨의 필체로 보인다”며 “당시 국과수 감정 결과는 객관적이고 공정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상운 과거사위 위원은 “검찰이 유서 원본을 제공하지 않아 필적 감정을 실시할 수 없어 명확한 결론은 못 내렸다”고 말했다.
과거사위는 사건기록을 검토해 보니 이 사건을 맡은 검사와 검찰 직원이 국과수를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하고, 검사가 감정 목적에 대해 국과수 직원과 통화하는 등 객관성을 의심하게 할만한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검찰이 미리 강씨가 유서를 대필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무리한 수사를 했다는 의심이 든다”며 “검찰은 사건 당일 강씨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으면서 이미 그를 자살방조사건 피의자로 지목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는 “국과수에 감정 결과를 어떻게 해달라고 한 적이 없다”며 “수사보고서를 나중에 만들면서 예전 것을 소급해 정리했기 때문에, (사실과는 달리) 사건 당일 강씨를 피의자로 지목한 것처럼 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법원에서 여러 정황상 강씨가 자살방조를 한 게 맞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이번 발표는 당시 수사기록도 보지 못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 신뢰할 수 없고, 수사가 잘못됐는지는 재심 절차를 통해서 확인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강기훈 유서 대필 사건은 서강대 옥상에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한 김씨의 유서를 강씨가 대필했다며 검찰이 강씨를 구속한 사건이다., 수사가 조작됐다는 주장이 불거지면서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으로 불리고 있다.
이와 함께 과거사위는 1984년 25명이 연루된 서울대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깃발사건)과 이듬해 5명이 구속된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사건에서 대공경찰의 고문에 의한 사건 과장과 조작 시도가 있었다고 밝혔다.
과거사위는 “민추위 관련자들과 당시 경찰관들 조사 내용을 종합하면, 고문 및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이 사건은 민주화운동의 예기를 꺾기 위해 고문을 동원하고 국가보안법을 확대 적용한 기획수사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1985년 김근태 의장 등을 고문한 민청련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깃발사건 수사 과정에서 민청련을 배후세력으로 단정한 경찰이 친북·용공성을 부각시켜 민주화세력을 일거에 제압하려고 했다”며 “국가안전기획부가 내사자료를 전달하는 등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이 당시 경찰관 2명의 고백에 의해 다시 확인됐다고 과거사위는 덧붙였다. 이본영 김태규 기자 ebon@hani.co.kr
1985년 김근태 의장 등을 고문한 민청련사건에 대해 과거사위는 “깃발사건 수사 과정에서 민청련을 배후세력으로 단정한 경찰이 친북·용공성을 부각시켜 민주화세력을 일거에 제압하려고 했다”며 “국가안전기획부가 내사자료를 전달하는 등 수사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전기고문과 물고문 등이 당시 경찰관 2명의 고백에 의해 다시 확인됐다고 과거사위는 덧붙였다. 이본영 김태규 기자 e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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