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직 시절 경찰에 온라인 여론 조작을 지시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를 받고 있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지난해 9월12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으로 출석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재임 시절 조직적인 ‘댓글 조작’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재판을 받고 있는 가운데, 당시 진행된 전방위적 ‘사이버 여론대응’의 민낯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24일 <한겨레>가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조 전 청장, 황아무개 전 보안국장 등의 공소장을 보면, 당시 경찰의 ‘댓글 조작’은 정보경찰·보안경찰·홍보경찰(대변인실) 등 세 축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경찰은 민간 보수단체 회원 7만8천여명을 동원하는 계획을 세우거나, ‘1박2일 합숙 댓글달기’까지 하면서 G20·희망버스·유성기업 등 각종 현안의 여론 형성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2010년 2월부터 2012년 4월 사이 이런 방식으로 작성된 글 중 이미 삭제되거나 사라진 내용을 제외하고 확인된 것만 댓글 7088개, 트위트 5790개, 위키트리 기사 18개에 이르렀다.
조 전 청장이 ‘댓글조작팀’을 꾸린 건 2009년 쌍용차 평택공장 점거파업 때였다. 당시 경기지방청장으로 ‘사이버 대응’의 효과를 봤다고 판단한 조 전 청장은 2010년 1월 서울지방경찰청장이 된 뒤 서울청 정보경찰에게 쌍용차 사례를 모델로 유사한 ‘여론 대응팀’ 구성을 지시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팀이 서울청 정보관리부 정보4계 산하의 ‘SPOL’(Seoul Police Opinion Leader)팀이다. 경찰 75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애초 목적인 ‘허위·왜곡된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을 넘어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른 노골적 ‘댓글 부대’가 됐다.
이 팀을 비롯한 정보경찰들은 2010년 9월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앞두고 이른바 ‘음향대포’ 도입이 논란이 되자 “빨리 도입해 불법시위꾼들에게 사용했으면 좋겠다. ㅋㅋ” 등의 댓글을 달았다. 2011년 5월 유성기업 노조 파업 진압 때 “신속한 공권력 투입에 동의합니다” 등의 댓글을, 2011년 대학생들의 반값 등록금 집회에는 “학교 앞 술집을 가봐라. 그 술값만 줄여도 부모 등골 휘는 소리는 안 들릴 거다” 등의 댓글을 달았다.
홍보경찰은 ‘1박2일 합숙 댓글달기’에 동원됐다. 조 전 청장은 대변인실 산하에 ‘인터넷 여론대응’을 이유로 ‘폴알림e’ ‘온라인 커뮤니케이터’ 등을 조직한 뒤 각종 현안에 댓글을 달게 했다. 2011년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시위’ 당시 부산경찰청에서는 홍보경찰 37명으로 ‘온라인티에프(TF)팀’을 꾸린 뒤 시위가 진행되는 1박2일 동안 합숙하며 댓글 등 여론대응 작업을 했다.
보안경찰들은 민간 보수단체를 동원해 여론조작 계획을 세웠다. 당시 황아무개 보안국장이 작성한 ‘안보 관련 인터넷상 왜곡정보 대응 방안’ 보고서를 보면, 경찰청 보안사이버수사대를 주축으로 한 1700여명의 보안경찰뿐 아니라 23개 보수단체 인터넷카페 회원 약 7만8천명을 동원해 인터넷 게시글을 올리거나 댓글을 달도록 유도한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검찰은 이 보고서 내용대로 보안경찰들이 보수단체 인터넷카페에 게시글을 직접 올리거나, 카페 운영진과 접촉해 인터넷 댓글 활동을 요청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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