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100돌] 특별기고
28일 낮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행사가 끝난 뒤 용산구 주민과 숙명여대 학생들이 대한독립만세를 외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건국부터 민주화까지 역사 밑동
항구적 평화 구축으로 이어가야 자민족 중심 집단주의와는 달라
여성·소수자 등 주권 보장 포함
다양한 주체 포용하는 방향 돼야 3·1운동 당시 평화 주체는 ‘모든 생명’
국가중심 발전 넘어 생태주의 전환
기술발전과 생명 조화 방식 고민을 해방은 지체되었던 3·1운동의 가치들이 실현될 새로운 계기였다. 정부수립과 신사회 건설의 전 과정이 3·1운동의 기획을 현실화하는 일이었다. 그 첫 출발이라 할 헌법의 제정에서 3·1운동의 유산이 얼마나 크고 중요한지가 확인되었다. 제헌헌법은 그 전문에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이 건립되었다고 명시했다. 현 헌법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되어 있다. 아홉 차례나 개정된 모든 헌법에서 3·1운동이 빠진 적이 없을 만큼 그 영향은 지속적이다. 여러 차례 위기에 처했던 헌법의 가치를 지키고 공권력에 희생당한 개인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노력 역시 3·1운동의 연속이었던 셈이다. 많은 희생과 피를 흘린 민주화 투쟁 역시 자유와 민주의 원칙을 강조한 3·1운동의 정신에 기초한 것이었다. 다소의 과장법이 용납된다면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의 70년 대한민국 역사가 제2의 3·1운동이었다고 해도 좋을 듯하다. 물론 분단이라는 장벽이 높았고, 독재와 차별, 불신과 갈등의 문제들도 적지 않았다. 이념의 대립이 가져온 내부의 균열과 갈등은 1946년 해방 후 처음 맞이한 3·1절 행사 때부터 반복되고 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을 함께하기로 한 남북정상의 합의가 종래 실현되지 못한 아쉬움이 유난히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이 시점에 한반도 평화를 향한 안팎의 노력이 가속화되고 있음을 주목한다. 사실 민족자결과 동북아평화를 강조했던 3·1정신을 내세우기에는 70년에 걸친 민족의 분단과 적대적 대립은 부끄러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다행히 촛불 시민의 정신을 중시하는 정부의 출범과 그 이후 진행된 한반도 안팎의 변화로 이 비정상적 상태가 종식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일은 3·1운동의 정신을 완전하고도 최종적으로 실현하는 일이 될 것이다. 지난해 남북의 지도자는 세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군사적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상호신뢰를 조성하며 한반도 비핵화와 공동번영의 미래를 약속했다. 싱가포르에서의 1차 북미정상회담에 이어 어제 끝난 하노이에서의 2차 북미정상회담도 오랜 정전상태를 평화체제로 바꾸기 위한 조치들에 합의했다. 아직은 갈 길이 멀고 남은 불신의 장벽도 높지만 체제를 달리하는 남과 북이 공존하는 새로운 시대, 남북의 사람과 물자가 자유로이 오가는 미래를 기대함직하다. 제3의 3·1운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필요로 한다. 먼저 민족에 경도된 관심에서 다양한 주체를 포용하는 방향으로의 혁신이 요구된다. 3·1운동은 민족자결을 내세운 독립운동임이 분명하지만 자민족 중심의 집단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민족의 공존이 필수적 요건이지만 그 궁극의 목표는 다양한 문화와 개성적 시민들이 평화롭고도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회의 건설이다. 3·1운동이 열어놓은 새로운 시대는 민족이란 전체 속에 모든 구성원이 동질화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강대국과 약소국이 제각각의 주권을 보장받는 것과 꼭 같이 여성과 소수자, 약자와 장애인이 함께하고 제 인권을 보장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3·1운동 본래의 지향이었다. 나아가 새로운 3·1운동은 국가 중심의 발전주의를 넘어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공존하는 생태적 패러다임으로 진전되어야 한다. 만해 한용운은 ‘조선독립에 대한 감상의 개요’에서 3·1운동의 철학적 원리를 자유와 평화로 요약하면서 그 주체를 우주만유라 했다. 그 우주만유라는 말에는 모든 살아 있는 생명, 심지어 자연의 산하까지도 포용하여 그 존재의 본질을 최대한 구현하기를 기대하는 원대함이 실려있다. 과학기술문명이 끝을 모를 정도로 진전되고 그 미래에 대한 기대와 염려가 교차하는 오늘, 디지털 환경의 기술조건과 사람 사는 세상의 연결방식을 고민하는 일도 포함되어야 할 일이다. 또한 새로운 3·1운동의 패러다임은 다양함 속에서 연대하고 배려하며 통합하는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참된 자유는 반드시 평화를 동반하고 참된 평화는 반드시 자유를 함께 해야 한다’는 한용운의 말을 모든 차원에서 실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엄혹한 식민통치의 어둠 속에서도 서로 다른 종교, 배경, 생각들을 한데 묶고 원대한 꿈을 키웠던 3·1운동 기획자들과 참여자들의 용기와 비전, 포용력을 되살린다면 결코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1929년 상해에서 사회단체연맹의 이름으로 발표된 ‘3·1운동 10주년 선언문’에는 대동단결을 호소하는 내용이 담겼다. 1940년 중경에서 발표된 21주년 기념선언에는 ‘제2의 3·1운동’을 준비하자는 호소가 담겨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3·1운동 100주년을 남북이 함께 기념하지 못한 것은 아쉽고 한국과 일본이 이날을 함께 축하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남북 화해의 실현과 한·중·일 연대의 발전은 3·1운동이 우리에게 남겨놓은 미완의 숙제인 셈이다. 오늘 우리가 어떤 선택과 실천을 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역사를 결정할 것이다.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정상회담에 주목하고 한반도의 비핵화와 항구적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이 자유와 평화, 배려와 소통을 원한 촛불 시민들의 기대와 연결되는 오늘이기를 바란다. 각자도생의 경쟁사회에서 지친 사람들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보듬으면서 내면의 평화, 사회의 평화, 국가간 평화를 꿈꾸는 3·1운동 100주년이 되어야 할 것이다. 3·1운동의 ‘지나간 미래’와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진지하게 숙고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와 살맛 나는 세상, 자긍심 가득한 자아를 향한 제3의 3·1운동이 힘차기 전개되기를 기대한다. 박명규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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