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관 내 갑질과 인권유린 실태 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가 2018년 3월 20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회의실에서 열렸다. 조합원들이 간담회에 앞서 손팻말을 들어보이며 '태움' 추방을 촉구하고 있다. 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지난해 2월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아산병원 고 박선욱 간호사에 대해 ‘업무상 질병(산업재해)’ 판정이 내려졌다. 박 간호사의 죽음은 간호사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이른바 ‘태움’(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은어) 문화가 심각하다는 사실을 공론화시키는 계기가 된 바 있다.
근로복지공단은 7일 고 박선욱 간호사의 유족이 제출한 유족급여 및 장의비 청구 사건에 대해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박 간호사의 유족은 지난해 8월 산재를 인정해달라고 신청했다.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신입 간호사였던 고인이 매우 예민한 성격으로 업무를 더 잘하려고 노력하던 중에 중환자실에 근무함에 따라 업무 부담이 컸고, 직장 내 적절한 교육체계나 지원 없이 과중한 업무를 수행하여 피로가 누적되고 우울감이 증가했다”고 판단했다. 특히 위원회는 “간호사 교육 부족 등 구조적 문제에서 야기된 과중한 업무”가 죽음의 원인이었음을 분명히 했다.
지난 1년여 동안 ‘고 박선욱 간호사 사망 사건 진상규명과 산재 인정 및 재발방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서울아산병원이 병원 인력 부족과 그로 인한 장시간 노동, 신입 간호사 교육 문제 등 고인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부정하고 있다며 병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해왔다. 병원 쪽이 “태움 문화는 없었다”면서 고인의 죽음을 개인 탓으로 몰아가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해 여름, 서울아산병원은 박 간호사의 죽음과 관련해서 간호사 채용 때 면접관들이 “올해 초 벌어진 ‘안타까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힘든 신규 생활을 어떻게 버틸 거냐” 등의 질문을 던져 물의를 빚기도 했다.
고 박선욱 간호사는 숨지기 이틀 전에 중환자실 환자의 배액관(몸 속에 고인 피나 체액을 빼는 관)을 빠뜨리는 실수를 하고 다음날 간호사 선배들과 면담을 한 다음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박 간호사의 휴대전화에는 ‘업무에 대한 압박감(과) 프리셉터 선생님의 눈초리(때문에) 의기소침해지고 불안한 증상이 심해졌다’는 등의 메모가 남겨져 있었다. 지난해 발표된 ‘간호사 인권침해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간호사의 40.9%가 “지난 1년 동안 직장에서 괴롭힘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속연수는 5.4년에 불과하다. 근무한 지 1년도 안돼 이직하는 간호사의 비율도 평균 33.9%에 달한다. 그만큼 병원이 간호사 등 ‘사람의 몸을 연료로 태우며’ 유지되는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뜻이다.
황예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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