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동안 제모습을 자랑하지 않은 채 조용히 광주정신과 함께 흐르고 있어요.”
<양림동 사람들>의 저자 홍인화(55·국제학 박사) 수피아역사연구소 소장은 14일 “1904년 이후 광주 양림동을 배경으로 살아온 선교사·목사·예술인·사회운동가 등 36명의 삶을 존경의 마음을 담아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무등산을 마주 보고 있는 작은동네인 양림동은 “정의와 봉사, 희생이라는 광주정신의 숨결이 살아 있는 현장”이다. 홍 소장은 양림동에 있는 수피아여고에 다니면서 헌트리(1936~2017) 선교사 사택에서 영어 성경을 공부했고 5·18광주항쟁을 경험했던 인연을 계기로 삼아 한 사람, 한 사람씩 기억을 길어 올렸다. 16일 오후 2시 수피아여고 안 유진벨기념교회에서 북콘서트가 열린다.
양림동 동산엔 1904년부터 85년까지 활동했던 선교사들의 묘지가 있다. 홍 소장은 “일제강점기 시절 선교사들이 광주에 들어와 근대교육과 의료활동을 처음 시작했다는 증표”라고 말했다. 이들은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의사·치과의사·간호사나 학교 교사를 겸했다. 그는 “그들은 단순한 선교에 그치지 않고 조선인들도 멀리하던 한센인들을 끌어 안았고 버려진 아이들을 거두고 보살폈다”고 말했다.
유진 벨(1869~1925·한국이름 배유지) 목사는 1904년 광주에 선교부를 설치한 뒤 숭일학교를 세웠다. 광주 최초의 서양식 교육을 도입한 수피아학교 설립자는 그의 부인 마가렛 벨이다. 유진 벨 선교사의 후손 인세빈·인요한은 ‘유진벨재단’을 세워 북한 결핵퇴치 운동을 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요한나 셰핑(1880~1934·서서평)은 1933년 한센인 정관수술에 반대하기 위해 서울까지 걸어가는 대행진을 통해 소록도 갱생원 설립을 끌어냈다.
근대교육을 받은 이들은 민족계몽운동에 앞장섰다. 3·1운동으로 옥고를 치렀던 오방 최흥종(1880~1966) 목사는 양림동 선교사촌에서 한센인들을 돌보면서 사회봉사 활동을 시작해 한평생 사랑을 실천한 사회운동가였다.
광주에서 3·1운동의 횃불을 가장 먼저 들었던 곳도 양림동이다. 수피아 여학교 학생 최현숙(1904~84)은 3·1운동 최연소 독립운동가이자 광주 최초의 여기자였다. 홍 소장은 “광주에서 100여 명이 이상이 3·1운동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양림동과 연관된 사람들이 59명이나 될 정도로 많았다”고 설명했다. 양림동엔 ‘5·18’ 때 시민들이 피를 나눠 부상자를 구했던 기독병원도 있다.
정대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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