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사회 사회일반

‘빨리 빨리’는 이득, ‘천천히’는 손해인가

등록 2019-03-16 09:17수정 2019-03-16 09:36

[토요판] 이런 홀로

주차장·식당자리 없을까봐
차 들어오지 않았는데도
음식 나오지 않았는데도
미리 맡아놓는 사람들

손해 보더라도 천천히 살기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기
젊은 세대가 보여줘야할 태도

아주 오래 전 한국 관광객들은 빨리 지나가기 위해 1달러를 여권에 끼워 캄보디아 입국 수속 공무원들에게 건넸다. 너도 나도 빨리 지나가기 위해 낼 필요 없는 1달러를 내밀었고, 그 행동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됐다.
아주 오래 전 한국 관광객들은 빨리 지나가기 위해 1달러를 여권에 끼워 캄보디아 입국 수속 공무원들에게 건넸다. 너도 나도 빨리 지나가기 위해 낼 필요 없는 1달러를 내밀었고, 그 행동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됐다.
지난 주말 날씨가 좋아 이사한 집에 가구도 살겸 한 대형 가구매장으로 향했다. 사람이 하도 많아 주차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줄을 서느라 지상도 이미 한가득 주차장이었다. 주차장 같은 지상 도로에서 30분 가량을 기다리다 겨우 순서가 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주차장도 몇 층은 이미 만차였다.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나가는 차들을 찾기 위해 층을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그러다 만난 한 어르신. 주차장 한 칸에 차가 아닌 한 나이든 어르신이 서 있었다. 주차장 칸칸마다 위에 달린 센서는 그 어르신을 차로 인식했고 비어있음을 보여주는 초록불 대신 자리가 찼다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뭐지? 어르신을 왜 세워둔 거지? 신종 고려장인가?

우리 차가 들어가려 하니 어르신은 두 팔을 이용해 크게 X표시를 하셨다. 뭐지? 일단은 마침 맞은 편 차가 빠져나갔고 우리는 어르신의 반대편에 차를 대기 시작했다. 다른 차가 들어와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이 서 있는 쪽으로 차가 향하면 어르신은 어김없이 팔로 X표를 만들거나 손과 고개를 양쪽으로 저으며 안 된다는 표현을 했다. 대충 무슨 상황인지 알 것 같았다. 이미 몇 층이 만차라는 표지판을 보고 주차장에 들어서기도 전에 이 어르신은 차에서 내려 비어있는 칸을 찾았고, 일행의 차가 들어오기 전까지 다른 차들이 주차를 할 수 없도록 막고 있는 것이다. 함께 차를 타고 주차장에 들어와 주차 공간을 찾기 위해 조금 빙빙 도는 게 그렇게 못 견디게 괴로운 걸까. 당장 들어와 주차를 해야 하는 차는 그 어르신 때문에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주차장을 계속 빙빙 돌고 있었다. 뒤따라 들어온 차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르신은 우리가 들어오기 전부터 우리가 차를 대고 차 안의 쓰레기를 정리하고 나와 매장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까지 일행을 기다린 채 센서를 붉게 밝히고 있었다. 이 넓은 매장 주차장에 자칫하면 차를 못 댈 수도 있다는 게 두려웠을까.

한국 관광객은 1달러 더 내라?

신기한 일은 이게 다가 아니었다. 이 매장에는 고른 물건을 구매하고 나오면 계산대 근처에 간단히 요기 거리를 할 수 있는 스낵바가 있다. 긴 쇼핑에 지친 우리는 간단히 핫도그나 먹고 가자며 줄을 서 주문을 하고 계산을 하고 조리된 핫도그를 받아 먹는 곳으로 이동했다. 식사가 아닌 간단히 간식 거리를 먹는 곳이라 서서 먹는 간이 테이블이 스무개 정도 마련돼 있었다. 네명 정도 한면을 차지하고 먹을 수 있는 정사각형의 테이블이었는데, 한명이 음식도 없이 서 있길래 자리를 함께 쓸 수 있겠냐고 물었다. 우린 둘이었다. 그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리를 맡아둔 거라며 일행이 있어 안 된다고 했다. 다른 자리에 또 음식도 없이 서 있는 사람에게 물어봤지만 또 일행이 있다며 거절당했다.

음식을 주문하는 줄과 주문한 음식을 받는 줄은 길었다. 주문은 들어간 건지, 음식이 나오긴 한 건지도 모른 채 그들은 자기네 일행을 기다리며 자리를 맡고 있었다. 10분이면 먹을 간식을 위해 우리는 테이블 몇 개를 돌아다니다, 겨우 한 테이블에서 간식을 먹었다. 뒤를 둘러보니 음식이 나오지도 않은 채 그렇게 너다섯은 쓸 수 있는 테이블을 각각 한명씩 꼼짝않고 지키며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테이블이 전체의 반이 넘었다. 간식을 다 먹고 쓰레기를 치우고 가는 동안에도 처음에 물어봤던 테이블의 일행과 음식은 오지 않았다. 동시에 복수의 사람들이 한손에는 간식을, 한손에는 구매한 짐을 가득 들고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었다.

아주 오래 전 한국 관광객들은 빨리 지나가기 위해 1달러를 여권에 끼워 캄보디아 입국 수속 공무원들에게 건넸다. 너도 나도 빨리 지나가기 위해 낼 필요 없는 1달러를 내밀었고, 그 행동이 쌓이고 쌓여 하나의 문화가 됐다. 한번 자리잡은 문화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캄보디아 공무원들도 한국 여권을 보면 당연스레 1달러를 요구한다. 1달러를 내지 않으면 한국 관광객이 기재한 입국 서류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가며 다시 써오라고 요구하거나 아주 느릿느릿하게 일처리를 한다. 어떤 블로그에는 투닥거리기 싫으면 그냥 31달러(도착비자 비용 30달러+1달러)를 준비하라고까지 말한다. 물론 부패한 캄보디아 입국 심사 공무원들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은 다른 국적의 여권을 지닌 사람들에게는 1달러를 요구하지 않는다. 습관적으로 빨리빨리를 요구하던 한국인들이 이런 폐단을 만들어냈다. 나는 그 폐단에 동조하지 않기 위해 1달러 없이 입국 심사를 섰다가 1시간 가까이 여러 명의 공무원들에게 입국 거부를 당해야만 했다.

이런 사회현상의 답답함을 사람들에게 토로하면 흥미로운 답변들이 돌아온다. 일단 전제는 ‘어쩔 수 없다’이다. 어떤 사람들은 한국이 너무나 좁은 땅덩어리에 여러 명이 비집고 낑겨 살다보니 애초에 사회적 거리라는 게 없어서라고 답했다. 타인을 배려하려 해도 할 수 없고 그러니 타인보다 일단은 내가 우선되는 사회가 됐다는 말이다. 또 어떤 이는 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생존하기 위해 경쟁은 치열해지고, 그 경쟁적인 사회에서 조금만 뒤쳐져도 손해본다는 인식 때문에 그렇다고도 했다. 가장 재밌고 흥미로운 답변은 한국전쟁 당시 나라에서 예고 없이 한강다리를 조기 폭파했고 그 결과 빨리빨리 움직이지 못했던 많은 사람들이 죽었던 일 등 트라우마 때문에 이렇게 행동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모든 답변의 공통점은 개인이 알아서 빨리빨리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손해 보거나 심지어는 생존에까지 문제를 겪을 수 있다는 인식이다. 어느 점에서는 동의하기도 하지만, 이런 현상은 경쟁과 생존과 관련되지 않은 일상에서도 여실히 보인다. 조용한 일상에서까지 타인으로부터 그런 침해를 받아야 하는 걸까. 그것이 한국에 사는 나의 운명인가.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예전에는 세대 차이의 문제일까 고민도 많이 했지만 더 겪어보니 꼭 세대 차이 문제만도 아닌 것 같다. 같은 젊은 사람들로부터도 불쾌한 행동을 많이 겪기도 했으니까. 대신 새로운 상식이 무엇일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런 이야기들이 오고 가면 ‘개인주의’ 이야기가 나온다. 물론 개인주의적인 게 정답은 아니겠지만 지금 사회보다는 조금 숨통이 트이고 타인을 인식하며 함께 살아가는 태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짧은 기간 동안 유럽에서 공부하며 배운 개인주의는 이기주의와는 달랐다. 좁고 조금 부족한 공간을 타인에게도 웃으며 나눠주고 함께 사용할 수 있게 배려하는 그런 게 개인주의적인 것이다. 물론 어렵다. 나도 줄을 서다 보면 누군가가 나를 밀치고 앞설까봐, 그래서 내가 뒤쳐지고 손해볼까봐 조마조마하다. 줄을 서는 동안엔 앞 사람과 가급적이면 멀리 떨어지지 않으려 하고, 혹시나 내가 손해볼까봐 전전긍긍하며 신경이 곤두서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조금 더 느긋하게 서로를 배려하며 지낸다면 모든 사람이 이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교과서스러운 말이긴 하지만 그게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은 스스로와 약속을 하고 지키려고 노력한다. 일상에서 조금은 ‘손해’보더라도 그건 진짜 손해가 아니니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기. 심지어 정말로 손해라 하더라도 그 정도 손해는 감수하며 천천히 행동하기. 조금만 더 나 외에도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기. 그게 지금 시대의 새로운 상식이 돼야 하고 바뀌어 나가는 젊은 세대가 보여주어야 할 태도라고 그렇게 믿고 스스로 조금 느린 속도로 살아가려고 한다.

혜화붙박이장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사회 많이 보는 기사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1.

전광훈 ‘지갑’ 6개 벌리고 극우집회…“연금 100만원 줍니다”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2.

하늘이 영정 쓰다듬으며 “보고 싶어”…아빠는 부탁이 있습니다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3.

‘윤석열 복귀’에 100만원 건 석동현…“이기든 지든 내겠다”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4.

검찰, 김정숙 여사 ‘외유성 출장’ 허위 유포 배현진 불기소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5.

‘장원영’이 꿈이던 하늘양 빈소에 아이브 근조화환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