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석 민족일보조용수기념회 운영위원장. 사진 권혁철 소장
“고강 권영은 선생의 유골을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줍시다.”
오길석 민족일보조용수기념회 운영위원장(70)은 장기수 출신 권 선생의 유해를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낼 방법을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다. 권 선생은 지난 1월 97살로 별세했다.
경북 안동 출신인 권 선생은 1948년 남한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해 남북협상 때 김규식 선생의 수행원으로 방북했다 평양에 남았다. 59년 남한으로 내려왔다 붙잡혀 22년간 복역했다. 81년 출소 뒤 경북 예천에서 지내다 생을 마쳤다. 경북 구미의 무연고자 유골보관소에 안치된 권 선생 유골은 규정에 따라 3년 안에 보호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산골처리될 예정이다.
그는 “북에 엄연히 권 선생의 가족들이 있는데 유해를 산골처리할 수는 없지 않느냐. 인도주의 차원에서 고인의 유해를 북의 가족에게 전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북쪽에는 김일성종합대를 졸업한 큰 아들 등 권 선생 자녀 4남1녀가 있다고 한다. 남쪽에는 권 선생 유해를 인수할 사람이 없다. 대학교수, 은행장, 고위관료 등을 지낸 친인척들이 남쪽에 있으나, 권 선생이 이들에게 불이익을 줄까봐 평생 인연을 끊고 살았기 때문이다.
오 위원장은 남쪽에서 숨진 장기수 유해를 북에 있는 가족에게 보낸 선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2005년 10월 정부는 장기수 정순택씨의 주검을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송환했다. 정씨는 1958년 간첩 혐의로 체포돼 30여년을 복역했다. 정씨가 병으로 숨지자 남쪽은 이 사실을 북쪽에 알렸고, 북쪽은 주검을 가족에게 보내줄 것을 요청했다. 정씨의 주검과 유품은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북쪽 유족에게 넘겨졌다.
오 위원장은 “여야 정치인들과 통일부의 협조를 구했으나, 최근 유동적인 남북관계, 북미관계 때문에 진척이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남북 합의가 되면 각계의 도움을 얻어 권 선생 유해 환송식을 열고, 평양까지 방문해 권 선생 가족에게 유해를 직접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권 선생 유해 송환이 남북화해협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북한과 미국이 한국전 참전 미군 유해를 발굴 송환하는 마당에 동족끼리 유해 송환을 못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00년대 중반 그는 조국평화통일불교협회 경남지역 후원회 실무 책임을 맡아 황해북도 사리원 국수공장에 밀가루를 보내기도 했다. 통일운동, 정치활동 등을 해온 그가 남북화해협력에 관심을 쏟는 것은 개인사도 영향을 미쳤다. 그의 어머니는 남편과 사별 직후 닥친 한국전쟁으로 큰 시련을 겪었다. 어린 시절 고향 경남 함안군에는 동네 담벼락마다 소총 탄피가 쌓여 있을 정도로 전쟁의 흔적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그는 “전쟁의 처참함을 몸소 겪은 어머니는 제가 ‘난리’란 말이라도 무심코 쓰면 혼을 냈다. 한반도에선 다시 전쟁이 있으면 안된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이념 잣대로 장기수 문제를 보는 일부 시각에 대해 그는 “뼈에는 색깔이 없다. 권 선생 유해를 북의 가족에게 보내는 게 인륜과 인도주의에 부합한다”고 강조했다.
권혁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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