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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서울대는 비정규직 백화점”…정규직화 요구 목소리

등록 2019-03-18 19:07수정 2019-03-18 20:31

2년 계약 만료 때마다 해고 두려움에 떨고
설 선물·야근 식대 미지급 등 차별 일쑤지만
학교는 무기계약직 전환마저 최소화 시도
“총장이 나서서 비정규직 문제 해결해야”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 홍보팀이 재학생으로 구성된 ‘소셜에디터’들과 함께 운영해온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서울대학교 글로벌사회공헌단 홍보팀이 재학생으로 구성된 ‘소셜에디터’들과 함께 운영해온 페이스북 페이지이다.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 페이스북 페이지 갈무리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직후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선언한 지 2년이 흘렀지만, 대표적 공공부문인 국립 서울대학교의 비정규직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및 85개 시민사회·학생·노동단체들은 18일 낮 12시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비정규직 해고 중단과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서울대 글로벌사회공헌단의 계약직 직원 해고와 서울대 강사 처우 문제 등을 해결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서울대는 2013년 사회공헌형 지도자를 키운다는 목적으로 ‘글로벌사회공헌단’을 만들며 사업 담당 실무진 14명을 모두 2년 계약직으로 채용했다. 이들은 20여개의 사업을 도맡아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글로벌사회공헌단에 있는 2명의 정규직 직원들과 달리 점심 식대, 야근 식대, 설 선물은 받지 못했다. 또 재계약이 만료되는 2년마다 계약직 직원들은 손쉽게 대체됐다.

남은 이들은 언제 계약 해지를 당한 뒤 쫓겨날지 몰라 두려움에 떨고 있다. 홍보팀에서 일하고 있는 ㄱ(32)씨가 대표적이다. 지난해 5월1일 글로벌사회공헌단은 홍보팀 직원을 2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팀에 홀로 남은 ㄱ씨는 모든 홍보 업무를 도맡아서 했다. ㄱ씨가 대학생으로 구성된 10명의 소셜에디터를 관리하며 만들어낸 홍보 콘텐츠만 해도 340여개다. 하루에 한개 꼴로 콘텐츠를 생산한 셈이다. 하지만 ㄱ씨는 지난 3월8일 “홍보팀을 해체하겠다”라는 말을 전해 들었다. “팀이 사라졌으니, 이제는 제가 잘릴 수 있는 명분이 생겼어요. 제 발로 나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어요.” 다음달 30일로 2년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ㄱ씨는 홍보팀 해체가 해고의 빌미가 될 것이고 믿고 있다.

이름을 밝히기 꺼린 글로벌사회공헌단의 한 계약직 직원은 기자회견에서 서울대 계약직 노동자들의 불안한 노동 환경을 바꿔달라며 오세정 서울대 총장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조국의 미래 보면 관악을 보라고 했습니다. 조국의 미래는 비정규직입니다. 국내 최고의 대학이자 국가 세금을 가장 많이 받는 교육기관인 서울대는 ‘비정규직 백화점’을 실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험은 캠퍼스 밖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결국 서울대가 남발하는 무분별한 비정규직 문제와 인력 돌려막기, 인건비 후려치기가 바로 조국의 미래이자 우리가 고개를 들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18일, 정오께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및 85개 시민사회·학생·노동단체들이 ‘서울대 비정규직 해고 중단과 정규직화를 요구합니다' 연대 기자회견을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었다.
18일, 정오께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및 85개 시민사회·학생·노동단체들이 ‘서울대 비정규직 해고 중단과 정규직화를 요구합니다' 연대 기자회견을 서울대 행정관 앞에서 열었다.
강사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날 기자회견에 나온 김미연(44) 서울대 언어교육원 한국어 강사는 “지난 10년 동안 노동자가 아닌 시간강사였기에 온갖 부당함을 겪었다”며 “아플 때면 병가는커녕 대강료를 주며 강의를 부탁해야 했다. 명절에는 언제나 빈손이었고 연말 상여금은 남의 이야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단순히 계약직 시간강사라는 이유로 어떤 법적 근거도 없이 임용 기간을 55살로 정해 놓아 지난해 소중한 내 동료가 언어교육원을 떠나야 했다”며 “이런 부당함에 이의를 제기할 때면 학교 측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당신들은 시간강사입니다. 근로자가 아니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않습니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은 엄연히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아야 하는 대상이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2일 서울대 언어교육원 시간강사는 담당 업무에서 학부나 대학원 교육과정을 담당하고 있지 않으므로 고등교육법에서 규정하는 강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계약 뒤 2년이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노동자에 해당한다는 해석이다. 서울대 쪽의 주장이 틀린 셈이다.

이처럼 학교 곳곳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지만, 서울대는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20일 서울대가 작성한 ‘자연과학대학 행정실 간접비직원 무기계약 전환 기준’ 문서에는 “무기계약은 정년까지 원칙적으로 전환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2년마다 재계약을 하지 않아도 되는 무기계약직으로의 전환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지난해 11월20일, ‘서울대가 자연과학대학 행정실 간접비직원 무기계약 전환 기준’과 관련하여 내부결재를 한 문서 중 일부이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공.
지난해 11월20일, ‘서울대가 자연과학대학 행정실 간접비직원 무기계약 전환 기준’과 관련하여 내부결재를 한 문서 중 일부이다. 비정규직 없는 서울대 만들기 공동행동 제공.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단체들은 “서울대는 각 단과대학교·연구소 등에서 근무하는 기간제 노동자들을 해고의 수렁으로 몰아넣었다. 심지어 노동자들에 대한 정규직 전환 심의위원회조차 열지 않았다. 이제는 총장이 나서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한편, 지난 2월12일 오세정 총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서울대는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에 대한) 정부가이드라인을 따라야 한다. 서울대가 비정규직이 많아 이 문제가 앞으로 해결될 문제라는 것은 확실하다”면서도 “모든 상황이 그렇지만 한꺼번에 할 수 있는 건 (없다). 여러 물적 제한이 있다”라고 했다.

이정규 기자 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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