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해결모임이 26일 서울 국회앞에 세운 팻말.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과 신상이 공개돼 있다.
“술만 안 먹었다뿐이지 도박에 외도까지, 완전 종합선물세트였어요.”
최정옥(43)씨는 2014년 소송 끝에 남편 ㄱ씨와 이혼했다. 아들(18)과 딸(16)은 최씨가 키우기로 했다. 법원은 ㄱ씨에게 월 100만원씩 자녀 양육비를 보내라고 판결했다. 5년이 지난 현재, 최씨가 받은 양육비는 0원. 지금껏 받지 못한 양육비를 합치면 모두 6100만원에 이른다. 위자료 4000만원도 받지 못했다.
일용직인 최씨가 버는 150만원 남짓한 돈으로는 자녀들 학원조차 보낼 수 없었다. 그런데도 전 남편 ㄱ씨는 매번 준다는 말만 하고 잠적을 하는 식으로 최씨 속을 뒤집어 놓았다. “법원 판결을 따르지 않아도 전 남편한테 아무런 불이익이 없었어요.” 답답한 마음에 4년 전 문을 연 양육비이행관리원에 ‘밀린 양육비를 받게 도와달라’며 지난해 10월 도움을 요청했다. 6개월이 지났지만 최씨는 여전히 전 남편으로부터 한 푼도 받지 못했다. 최씨는 “채권추심 등 진행 속도가 너무 느리다”고 말했다.
‘양육비해결모임’ 회원인 최정옥(43)씨가 26일 서울 국회 앞에서 이혼 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전 남편 ㄱ씨의 얼굴이 공개된 팻말을 들고 양육비 미지급자를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국회에 촉구하고 있다.
최씨처럼 이혼 뒤 자녀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 가구 모임인 ‘양육비해결모임’(양해모) 회원 10여명이 2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 모였다. 양육비 미지급자를 제재하는 내용을 담은 법안을 통과시켜달라고 국회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9월 만들어진 양해모에는 양육비를 받지 못한 한부모 370여명이 활동 중이다. 회원 성비는 여성이 9, 남성이 1 정도다.
앞서 24일 여성가족부 산하 한국건강가정진흥원은 “2015년 3월25일 진흥원 안에 설치된 양육비이행관리원이 4년 동안 비양육 부모로부터 밀린 양육비를 받아주거나 협의를 도운 사례는 모두 3722건이며 금액으로는 404억원에 이른다”고 밝힌 바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춘숙·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송희경 자유한국당 의원이 각각 대표 발의한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 등이 계류 중이다. 이들 법안은 양육비 미지급자의 운전면허 제한과 출국금지, 신상 공개, 양육비 미지급 땐 형사 처벌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양해모는 “실효성 있고 강력한 법안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양육비 미지급은 10년, 20년 전과 다름없는 상태로 아이들의 피해만 커질 것”이라며 해당 법안들의 제정을 촉구했다. 강민서(47) 양해모 대표는 “양육비를 주지 않기 위해서 자녀가 친자가 아니라고 주장하거나 재혼한 부인이나 다른 사람 명의로 재산을 빼돌리는 경우도 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양해모는 국회 앞에서 ‘나쁜 당신들 사진전’도 함께 열었다. 이번이 10번째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과 신상을 공개하는 자리다. ‘나쁜 아빠를 찾습니다’ 같은 문구와 함께 양육비 미지급자의 얼굴이 인쇄된 팻말 20개가 나란히 국회 앞에 자리 잡았다. 최씨 역시 전 남편 ㄱ씨의 얼굴이 인쇄된 팻말을 들고 나왔다. 최씨는 “신상 공개가 너무하다는 목소리도 있는데 그게 싫으면 양육비를 주면 되지 않느냐”며 “신상 공개는 처벌보다는 (양육비 미지급) 예방과 방지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양해모는 “국회를 시작으로 양육비 미지급자의 주거지역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진전과 서명운동을 펼칠 것”이라고 밝혔다.
글·사진 이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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