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0년의 근·현대사 모습을 간직한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자리한 돈의문구락부의 모습. 서울시 제공.
2층짜리 건물 밖으로 재즈 소리가 흘러나왔다. 안으로 들어서자 붉은색 무대 위에 놓인 금빛 스탠딩 마이크가 관람객을 맞았고, 창가에는 20세기 초에 쓰였을 법한 축음기가 멈춰 서있었다. ‘돈의문구락부’란 이름을 단 이곳 주변으로는 독립운동가의 방과 응접실을 재현해 놓은 ‘독립운동가의 집’과 1980년대 사진관과 오락실 등을 본뜬 공간이 곳곳에 자리해 있었다.
3일 찾은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27번지 일대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지난 100년의 근·현대사를 간직한 모습이었다. 16개의 마을전시관과 9개의 체험교육관, 9개의 마을창작소가 이곳에 들어서 있었다. 마을전시관에는 1900년대 초부터 1980년대를 상징하는 문화요소들이 들어섰다. △3.1운동과 4.11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독립운동가의집 △시민수집가가 아리랑 음반과 삐삐, 카폰, 시티폰을 기증한 시민갤러리 △1960~80년대 영화관을 옮겨놓은 듯한 새문안극장 △옛 오락실게임기가 있는 돈의문콤퓨타게임장 △옛 이발소를 재현한 삼거리이용원 등이 그것이다. 이곳을 조성하는데 350억원의 예산이 들어갔고, 해마다 25억원의 운영비가 투입될 예정이다.
서울 종로구 돈의문박물관마을이 이달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간다. 서울시는 ‘근현대 100년의 역사·문화가 살아 숨 쉬는 기억 보관소’를 주제로 전시관과 체험공간을 조성했다. 서울시 제공.
이 일대는 2003년 돈의문1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뉴타운) 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전면 철거가 예정됐던 곳이다. 하지만 서대문 안쪽 첫 번째 동네라는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2015년 마을 원형을 유지하는 쪽으로 개발 계획이 바뀌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당시 뉴타운 사업의 대안으로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면서다. 하지만 마을이 전면 보존된 것은 아니다. 기존에 터를 잡고 살던 주민들은 이곳을 떠났다. 꼬불꼬불한 골목길과 오래된 쌀집, 배달자전거, 식당 등 건물들도 철거됐다. 2016년에는 자신이 운영하던 일식집이 강제철거 되자, 인화물질을 몸에 뿌리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주민도 있었다. 마을 소유권 문제를 두고는 서울시와 종로구가 다툼을 벌이면서 사람이 찾지 않아 한때 ‘유령마을’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서울시는 이런 아픈 기억을 가진 마을의 원형만큼은 유지하며 ‘도시재생형’ 역사문화공간으로 돈의문박물관마을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2018년 1월에 서울시가 펴낸 ‘돈의문박물관마을 조성과정 기록백서’에서 시는 전면 철거 후 개발하는 방식을 반성하며 시작된 도시재생사업의 한 예로 이곳을 소개했다. 오래된 도시조직, 삶과 기억, 역사적 층위가 잘 보존된 작은 마을을 박물관 마을로 보존해 서울시민의 역사문화 자산으로 남기겠다고 설명했다.
돈의문마을박물관에는 16개의 마을전시관과 9개의 체험교육관, 9개의 마을창작소가 들어선다. 위는 돈의문마을박물관을 안내하는 지도이다. 서울시 제공.
이곳 골목길 한쪽에는 마을이 철거되는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남성이 담긴 벽화도 있다. 철거 과정에서 고통받은 주민들의 모습을 담은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뉴타운 정책과 도시재생과정에서) 애환이 있었다는 것을 벽화에 담은 것”이라며 “돈의문마을박물관 전체 시설 중 앞으로 편의시설로 쓰일 5곳은 기존에 장사하셨던 분들에게 우선권을 줄 것이다”라고 밝혔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은 ‘근현대 100년, 기억의 보관소'라는 개념으로 이달부터 운영에 들어간다. 매주 화요일에서 일요일까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되며 입장료는 무료다.
이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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