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청사.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대법원이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법관 66명의 비위 사실을 통보받고 한 달 넘게 검토만 하는 동안 일부 대상자는 징계시효(3년)가 만료되고 있다. 법원 안팎에서 “대법원의 직무유기가 심각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은 지난달 5일 사법농단 사건과 관련해 현직 법관 66명의 비위 사실과 자료를 검찰에서 통보받았다. 그런데 11일 현재까지 이들에 대한 징계 절차에는 착수하지 않고 있다. 검찰의 비위 통보 이후 최근까지 대법원이 내린 조처는 지난달 8일 이 사건과 관련해 기소된 임성근·신광렬 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 등 현직 법관 6명을 재판에서 배제하고 사법연구로 발령낸 것이 전부다.
고위 법관을 지낸 변호사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공소장을 보면 2016년 3~4월께 많은 일이 벌어졌는데, 이 말은 곧 올해 3~4월에 징계시효 3년이 끝나는 법관들이 많다는 뜻”이라며 “이렇게 시효에 쫓기는 상황인데도 대법원이 (검찰 통보 이후) 한 달이 지나도록 징계 절차에 착수하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내는 것은 심각한 직무유기”라고 지적했다.
실제 양 전 대법원장의 공소장 등을 살펴보면 △헌법재판소의 정책 정보, 헌재소장에 대한 동향 수집·보고 △헌재소장을 비난하는 내용의 신문 대필 기사 게재 △통합진보당 소송 개입 △이른바 ‘물의 야기’ 법관에 대한 불이익 인사 조처 △국제인권법연구회와 인사모(인권 보장을 위한 사법제도 소모임) 와해 시도 △부산고법 비리 판사 사건 무마 등이 2016년 3~4월에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법관징계법은 “징계 등의 사유가 있는 날부터 3년이 지나면 그 사유에 관하여 징계 등을 청구하지 못한다”고 못 박고 있다. 2016년 3~4월에 벌어진 사건은 징계시효가 이미 만료됐거나 곧 만료될 상황에 놓인 것이다.
한 법관 출신 변호사는 “비위통보 내용 중엔 사실관계가 복잡하지 않고 검찰 수사를 통해 증거가 명확히 드러나 있어 대법원 자체 조사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사안들이 포함돼 있다”며 “대법원이 자체 검토를 한다면서 시간을 보내는 사이 징계시효가 소멸해 버리면 그 책임은 누가 질 지 의문”이라고 했다.
앞서 조재연 법원행정처장은 지난달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업무보고 때 “검찰에서 송부한 비위통보 내용과 법원행정처 보유 자료, 징계시효 도과 여부 등을 종합 검토해 추가 징계청구 범위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추가 징계 청구에 앞서 대면조사 등 인적 조사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 처장이 국회에 업무보고를 한 지도 벌써 20여 일이 지났다.
강희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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