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산하 검찰 과거사위원회(과거사위)가 이른바 ‘낙동강변 2인조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돼 21년간 옥살이를 한 이들이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17일 밝혔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이 고문 정황이나 진술의 모순점 등을 충분히 살펴보지 않은 채 허위자백에 기대 기소했다며, 이런 일들이 재발되지 않도록 법적인 절차를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지난 1990년 1월4일 부산 사상구의 낙동강변에서 차량 데이트를 즐기던 한 커플을 신원을 알 수 없는 범인들이 납치한 후, 여성은 강간·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하고 남성에게는 상해를 입힌 사건이다. 당초 사건은 범인을 붙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처리되었지만, 1년여가 지난 1991년 11월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별도의 경찰 사칭 사건으로 붙잡힌 최아무개씨, 장아무개씨의 자백을 받아내면서 사건이 재기되었다. 이후 최씨와 장씨는 대법원에서 무기징역이 확정돼 각각 21년 이상을 복역한 후 출소했다.
과거사위는 최씨와 장씨를 비롯해 사건 관련자들을 두루 조사한 결과, 이들이 경찰 수사과정에서 고문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사건이 경찰에서 부산지검으로 송치된 직후부터 범행을 부인하면서 경찰의 물고문 등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자백했다고 주장했고, 공판과정에서도 이 주장을 유지했다.
과거사위는 최씨와 장씨가 묘사하는 물고문의 장면이 ‘그림으로 그려낼 수 있을 정도’로 구체적이고 일관된 점, 이들이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경로당 건물이 실제로 과거 파출소로 사용됐다는 점, 이들과 비슷한 시기에 부산 사하경찰서에서 물고문으로 허위자백을 했다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사례가 있다는 점 등을 ‘허위자백’ 정황의 근거로 들었다.
또 과거사위는 이들이 범행을 저지른 근거가 된 ‘경찰관 특수강도 사건’도 조작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 당시 부산 중부경찰서에 근무하던 경찰관 ㄱ씨는 “낙동강변 살인 사건 한 달 전인 1989년 12월 낙동강변에서 한 여성과 차에서 경치를 감상하던 중 칼을 든 괴한 2명에게 돈을 빼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과거사위 조사 결과, ㄱ씨가 탔다고 주장하는 ‘르망’ 차량에 해당하는 차량번호가 존재하지 않았고, ㄱ씨의 주장과 달리 차량 트렁크에 비상탈출 장치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더불어 과거사위는 경찰이 최씨와 장씨에게 알리바이가 될 수 있는 참고인들의 진술조서을 왜곡하고 은폐한 정황도 발견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과거사위는 여러 ‘고문’ 정황과 진술의 모순점에도 불구하고 당시 검찰이 이를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고 보았다. 과거사위는 “당시 검찰은 이들의 자백진술과 객관적 사실 사이에 모순점들이 여럿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기소를 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과거사위는 피의자가 자백을 번복하는 경우 검사가 자백을 검증할 수 있는 기준과 절차를 마련하고, 살인이나 강간과 같은 강력사건은 증거물을 공소시효 만료까지 보전할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또 장애인 등 법률적 조력이 필요한 조사자들이 조서를 열람할 때 신뢰관계인을 반드시 동석하게 해 실질적인 조서열람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을 권고했다.
임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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