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지난 1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경호 선임기자 jijae@hani.co.kr
이미선 헌법재판관 후보자가 양승태 대법원 시절 재판 거래 의혹을 받는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가운데, 이 후보자가 학술지 기고 논문에서 해당 판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다가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화돼고 나서야 부정적인 평가를 덧붙였다는 현직 부장판사의 주장이 나왔다. 현직 부장판사는 이같은 주장의 글을 법원 내부망에 올리고 이 후보자에게 “지난해가 돼서야 다른 내용의 평가를 추가한 이유가 무엇이냐”고 공개 질의를 보냈다.
17일 송승용 수원지법 부장판사(45·사법연수원 29기)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이미선 후보자님께 정중히 묻습니다’라는 공개 질의글을 올렸다.
송 부장판사는 “코트넷 종합법률정보에서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 대해 이 후보자가 작성한 논문 4건을 찾았다”며 “논문 4건 말미에는 모두 ‘대상 판결의 의의’라는 목차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후보자는 해당 판결의 의의를 설명한 목차에서 대법원 다수의견을 옹호하면서 “근로자의 (추가 법정수당) 청구를 한시적으로 제한해 법적 안정성과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의 조화를 도모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검찰의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화된 지난해 논문에서는 앞선 평가와 함께 “그러나 동시에 해당 판결은 신의칙이 적용되기 위한 요건을 엄격하게 제한함으로써 이러한 추가 청구의 제한이 어디까지나 예외적임을 명시했다”는 문장을 덧붙였다.
송 부장판사는 “옹호라는 표현이 적당한지 모르겠지만 (이 후보자의 의견은) 제가 보기에는 적어도 다수의견에 반대하는 입장으로는 해석되지 않는다”며 “순전히 제 개인적인 의견에 의하면 이러한 다수의견은 ‘대법원이 정부와 재계의 입장을 최대한 파악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일 뿐,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인 기여를 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이 명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소위 통상임금 사건의 판결은 노동자의 권리를 확장하는 데 실질적으로 기여한 판결입니까? 후보자님은 그 판결의 다수의견에 동의하시는지요? 3건의 논문에서 동일하게 유지됐던 대법원 판결의 의의에서 2018년에서야 이전과 다른 평가가 추가된 이유가 무엇입니까”라고 이 후보자에게 공개 질의했다.
송 부장판사는 “헌법재판소의 건물 외벽 꼭대기 층에는 옆으로 나란히 무궁화 문양 9개가 돋을새김 돼있다. 이 9개의 무궁화 문양은 9명의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상징한다”며 “정의의 현자, 헌법재판소 재판관, 그 무궁화 문양 중 한 자리에 임명될 자격이 있는지는 이제 후보자님이 직접 답해달라”고 글을 마무리지었다.
전날 한 언론은 이미선 후보자가 대법원 재판연구관이던 시절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 과정에 관여했고 ‘신의칙 논리’에 대해 옹호하는 취지의 논문을 외부에 기고했다”고 보도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통상임금 판결은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판결로, 행정처는 2015년 작성한 문건에서 “사법부가 VIP(박근혜 대통령)와 BH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 하기 위한 협조 사례”로 대법원 통상임금 판결을 예시로 언급한 바 있다. 2013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기업에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는 등의 경우에는 노사가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약속한 애초의 ‘신의’에 따라 예외를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노동자의 목소리를 외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한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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