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낮 12시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붉은 색깔의 옷이나 머플러, 모자를 착용한 자유한국당 당원들과 시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독재 타도, 헌법 수호”란 문구가 적힌 현수막과 태극기가 동시에 펄럭였다. 현수막을 흔드는 이들은 상기된 얼굴로 독재가 아닌 “좌파 타도”를 외쳤다. 오후 1시에 가까워지자 세종문화회관 앞 계단과 인도, 광화문광장까지 붉은 옷을 입은 이들로 가득 들어찼다. 단상 앞 사회자가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를 ‘원내 총사령관’이라고 호명하자 이들은 일제히 소리를 지르며 환호했다. 여야 4당의 개혁입법 저지 등을 위해 지난주에 이어 또 열린 자유한국당의 제2차 규탄대회 현장이다.
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법안(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을 위한 형사소송법 개정안과 검찰청법 개정안 등 4가지 개혁입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하는 것을 막고, 문재인 정권을 규탄하기 위해 이날 두 번째 대규모 장외집회를 개최했다. 이날 집회에는 의원들은 물론 전국 253개 당협에서 위원장과 당원 등이 총동원됐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집회에 당원과 시민 5만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있었던 1차 ‘문재인 STOP!, 국민이 심판합니다!’ 규탄대회에는 주최 쪽 추산 1만2천여명(경찰 추산 2천여명)의 당원과 시민들이 나왔다.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와 의원들이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문재인 STOP(멈춤), 국민이 심판합니다!’에서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와 나경원 원내대표 등 당 중진들은 입을 모아 여야 4당이 개혁입법을 억지로 밀어붙이고 있지만 자신들이 온몸으로 막아내고 있다고 자찬했다. 황 대표는 사법개혁특별위원회 위원이던 오신환 바른미래당 의원이 당에 의해 사·보임된 것을 두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보임이라는 방식으로 법안에 반대하는 의원을 억지로 밀어내고 있다. 이게 과연 자유 대한민국이냐”라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우리 당이 이런 야만의 일을 국회에서 버젓이 못 하도록 막고 있다. 정의로운 투쟁을 우리 당이 하고 있으니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나 원내대표는 “좌파 세력들이 의회 민주주의 테러를 하고 있다. 망치와 빠루를 가져와 문을 부수고 팩스로 의원을 사·보임시키기도 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며칠째 잠도 국회에서 자며 (법안이 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되는 것을) 막아내고 있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개혁입법안 내용에 대해서도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좌파 독재’로 나아가기 위한 시도”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먼저 공수처법을 두고 나 원내대표는 “한마디로 공포 정치의 시작”이라며 “깨끗한 척, 착한 척, 정의로운 척하는 좌파 정권이 또 공수처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지만 대한민국의 법원과 검찰, 경찰, 국회의원을 손아귀에 쥐고 꼼짝 못 하게 하는 그들의 칼”이라고 말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에 대해서는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실시되면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안정적 과반을 확보하게 된다”며 “좌파 연합세력이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황 대표도 “(현 정권이) 듣지도 보지도 못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해 자신에게 유리한 선거판을 만들려고 한다. 이게 독재정권이 아니면 뭐냐”라고 말했다. 이들은 발언을 마친 뒤 청와대 인근 서울 종로구 청운효자동 주민센터까지 가두행진을 벌이기도 했다.
집회에 참여한 시민들은 “정부나 여당 모두 민생은 뒤로하고 (개혁 입법) 발의에만 몰두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부산 진구에서 올라왔다는 신아무개씨는 “지금 국회에서 논의되는 개혁입법들은 말만 그럴싸하지 과거에 얽매인 법안이다. 국민 정서와 민생에는 동떨어져 있다”며 “예를 들어서, 공수처법도 전 정권을 심판하자는 것으로 핏줄 같은 경제와 민생은 뒷전에 두고 과거만 보자는 법안”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수원시에서 왔다는 익명을 요구한 시민도 “문재인 정부 들어 물가도 오르고 국민들 사는 게 힘들어졌는데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투쟁해주고 있지 않나. 우리도 거기 보탬이 되어야 할 것 같아서 나왔다”고 말했다. 극우 성향의 유튜버로 알려진 성재준씨는 “자유한국당 의원 114명은 단순한 114명이 아닌 수백만명의 자유 국민들이 투표를 통해서 뽑은 사람이다. 문재인 정부가 패스트트랙으로 이 법안을 통과시킨다면 이건 자유한국당을 국회의원으로 만든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비판했다.
27일 오후 3시께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에 빼곡히 들어찬 자유한국당 당원들과 시민들. 김민제 기자
한편,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사법개혁특별위원회 개의를 막기 위해 채이배 바른미래당 의원을 사실상 감금하고 국회의장실을 점거하는 등 개혁입법 논의를 봉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자유한국당을 비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도 함께 커지고 있다.
지난 2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
자유한국당을 해산시켜달라’는 제목의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청원인은 게시글에서 “자유한국당은 툭하면 장외투쟁을 해 정부 입법을 발목잡기 하고 소방에 관한 예산을 삭감하여 국민의 안전을 심각하게 하며 정부가 국민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지 못하도록 사사건건 방해를 하고 있다. 국민에 대한 막말도 도를 넘고 있다”며 자유한국당 정당해산을 요구했다. 27일 오후 3시 현재 이 청원에는 모두 12만5000명 가까이 동의했다.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