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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회일반

인권위 “정신질환 아동·청소년의 치료·인권 보장해야” 복지부에 권고

등록 2019-05-01 15:43수정 2019-05-01 19:24

“정신질환 아동·청소년, 초기 검진·치료 늦어 중증·만성화돼”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243곳 중 아동·청소년 특화는 3곳
2010년 김정훈(가명) 군은 말수가 적었지만, 음악과 친구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멍하게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고, 공부보다 게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김 군의 부모는 ‘사춘기 특성’이라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고2가 된 김군은 “친구들이 내게 욕을 한다. 나를 왕따시킨다. 내 밥에 몰래 독을 탄다”는 등 피해망상적인 말을 하며 등교를 거부했다. 모래 놀이 치료를 받았지만 증상은 나아지지 않았고 2011년 자퇴를 했다.

자퇴 뒤 김 군은 일주일에 두 번, 모래치료를 받는 날 외에는 방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밥을 차려줘도 먹지 않고,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라면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1년간 이같은 생활을 지속하던 2012년 어느 날, 검정고시 학원의 권유로 찾은 정신건강복지센터에서 김 군은 ‘편집성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외래치료를 받으며, 소량의 항정신병약물을 복용하자 김 군의 피해망상과 환청 증세는 나아지기 시작했다. 1년 뒤에는 직업재활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김 군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였던 2010년 이후 약 3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정신건강복지센터장이었던 백종우 경희대 교수(정신건강의학과)는 “2010년 처음 증상이 있었을 때 병원 진료를 받았다면, 조현병 발병 시기를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었다”며 “대부분의 부모가 아동·청소년의 정신 이상 증세를 ‘사춘기 방황’으로 생각하고 넘기거나, 정신과 치료에 대한 사회적 편견 탓에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 치료가 늦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의 정신질환 치료 ‘골든타임’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보건복지부에 “아동·청소년의 정신건강 및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고 1일 밝혔다. 인권위는 △아동·청소년기 정신질환실태조사 주기적 실시 △아동·청소년을 위한 정신건강증진시설의 지역별 확충 등을 권고하며, 아동·청소년이 초기 진료 시기를 놓쳐 정신질환이 중증·만성화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도록 정책적 토대를 마련하라고 강조했다.

인권위 설명을 종합하면, 조현병 등 정신질환은 대부분 10대 중·후반에서 24살 이전에 발생하지만, 상당수의 진단이 검진과 치료로 연결되지 않았다. 2017년 보건복지부가 실시한 ‘장애인 실태조사’를 보면 정신장애 발병시기는 만10∼19살(23.3%), 만20∼29살(35.5%)에 몰려 있었다. 반면 보건복지부의 ‘아동·청소년의 정신장애 유병률 조사’를 보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상담을 받은 비율은 3.09%에 불과했다. 인권위는 “부모가 자녀의 정신건강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낙인 등 정신건강의학과 치료에 대한 주위의 부정적 시선을 의식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 조사 결과 정신의료기관에 입원한 아동·청소년도 기관 안에서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인권위가 2017년 정신의료기관에 입원경험이 있는 10살~24살의 아동·청소년 1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의료시설의 정신장애아동 인권 증진을 위한 실태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33%는 ‘치료과정에서 자신의 병명과 치료 계획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고 답변했으며, ‘퇴원 후 지역사회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했다(49.5%)’는 답변도 많았다. 같은 조사에 참여한 160명의 정신의료기관 종사자 역시 중 61.3%가 ‘아동·청소년을 위한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018년 기준 전국 정신건강복지센터 243곳 중 아동·청소년에 특화된 센터도 3곳 뿐이었다.

인권위는 “아동·청소년기는 정신질환 초기 발생 시기로 치료환경과 경험이 향후 치료 태도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영미권 국가들처럼 아동·청소년의 입원 기간을 최대한 짧게 하고, 비슷한 연령대와 최대한 유사한 생활조건을 제공하는 등 아동·청소년 환자 인권 보호 지침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권지담 기자 gonj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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